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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로마의 영웅 시저의 최후

간천(澗泉) naganchun 2013. 5. 1. 09:41

 

로마의 영웅 시저의 최후

 

 

 

영어로 <율리우스 시저(Gaius Iulius Caesar/BC100년-BC44년 3월 15일)>는 로마의 공화정 시기의 정치가이며 군인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jacta est)>, <왔다, 보았다. 이겼다.(Veni, vidi, vici)>는 명언을 남긴 영웅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후에 로마인에게서 신으로 추앙받았고 그의 이름은 로마 황제의 칭호로도 쓰였다.

<시저> 사후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BC 63년-BC14년)는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었는데 그때 임페라터 카에자르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 )라고 개명하였는데

임페라터(Imperator)-로마제국 군 종신최고 사령관이란 뜻이며

카에자르(Caesar)-시저의 후계자로서의 권위를 뜻하며

아우구스투스(Augustus)-신과 같은 존엄을 뜻한다.

이 카에자르(시저)라는 이름은 후대 독일이나 러시아의 황제를 뜻하는 말로서도 쓰였다.

이러한 영웅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이제부터 약 1900년 전에 쓰인 책을 근거로 로마의 영웅 시저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그 책이란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BC70년경~ BC160년경)의 저서 <로마 황제전>과 풀루타쿠스(Plutarchus、BC46년경~ BC 127년경)의 <영웅전>이다.

 

시저가 죽기 전날인 BC44년 3월 14일 .만찬회 석상에서 우연히도 <어떤 죽음을 원하는가?>하는 것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 때 시저는 <예기치 못한 돌연한 죽음이 좋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예기치 못한 죽음이 시저에게 다가왔다.

 

BC44년 3월 15일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그 전날 시저 본인과 아내는 시저의 죽음을 예감하는 꿈을 꾸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시저는 원로원에 가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나 <의원 전원이 기다리고 있으니 와 달라.>는 재촉을 받고 시저는 하는 수 없이 17시경에 겨우 집을 나섰다.

 

시저가 길을 걷고 있노라니 암살 계획을 알고 있는 사나이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에게 밀고장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을 혼자서 읽어주십시오. 당신의 운명에 관한 중대한 일에 대하여 적혀 있으니까요.>

 

그러나 시저는 나중에 읽는다 하고 다른 손에 잡고 있던 서류와 함께 넣고 말았다. 그러나 도중에 한 번 읽으려 하였으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많아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점쟁이 스푸린나와 만났다. 전날 시저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 일이 있었다.

<위난에 주의하여 주십시오. 3월 15일이 지나면 이젠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시저는 이렇게 답하였다.

<너는 사기꾼이군! 3월 15일이 되었지만 나는 아무런 위해도 받지 않고 있지 않으냐?>

스푸린나는 답하였다

<과연 3월 15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이 말에 대하여 시저는 어떻게 답하였는지 모른다. 아마도 빙그레 웃었을 것이다.

비극의 순간은 다가오고 이제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시저는 원로원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다. 암살단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려는 듯이 앉은 채로의 시저의 둘레를 둘러섰다. 그들 중 티리우수(Tiriusu)가 시저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추방당하고 있는 형제를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애원했다.

그리고 티리우수는 시저의 양어깨를 눌렀다. 이것이 암살단 사이에 정해진 공격 개시의 신호였다.

시저는 티리우수를 향하여 소리 질렀다.

<너는 폭력을 휘두르려는 것이냐?>

 

돌연 가스카가 얼굴을 돌린 시저의 목에 검으로 상처를 내었다. 시저는 가스카의 팔을 붙잡고 가지고 있던 펜으로 가스카를 찔렀다. 그리고 가스카에게 이렇게 소리 질렀다.

<비굴한 놈아 가스카야,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놀란 시저는 의자에서 일어서려 하였으나 다음에 또 검이 날아왔기 때문에 도망칠 수가 없었다. 시저는 만사가 끝난 상태에 빠졌다.

사방 필방에서 시저에게로 검이 날아왔다. 시저는 찔리면서도 몸을 틀어서 도움을 청하였다. 시저를 도와주려는 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는 암살 음모에 가담하지 않은 의원도 많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크게 놀라고 공포에 질려서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시저를 살려줄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로마의 영웅 시저는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 그의 눈앞에서 그의 심복이었던 마르크스 브루터스(Marcus Junius Brutus, BC85년~BC42년)가 검을 뽑았던 것이다.

시저는 이것을 보고 죽음을 각오하고 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로마 황제전>에는 시저가 얼굴을 가린 것은 <적어도 죽음에서 체면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라 한다.

그리고 소리 질렀다.

<브루터스! 너도냐? .>

결국 시저는 23개소에 검으로 상처를 받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졌다. 그가 쓰러진 장소는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수의 동상 밑이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시저는 숨을 거두고 암살단은 모두 도망쳤다. 시저는 한참 후에야 3명의 노예에 의하여 들것에 실려 한쪽 팔을 내려뜨린 채로 흔들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사저의 장례는 국장으로 성대히 치렀다. 그의 유체는 상아로 만든 관에 안치되고 촛불을 밝힌 곳에서 군중들은 조상하기 위하여 공물을 바쳤다.

화장하는 자리에서 화장이 다 끝나서 불이 꺼지려는 순간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그이 유회는 흘러 흩어져버렸다 한다.

 

그는 만난을 무릅쓰고 로마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었는데 결국 그가 얻은 것은 공허한 명성과 여러 사람의 질투를 안고 있는 영예뿐이었다.

향년 56세로서 혜성처럼 나타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사라진 영웅으로 그의 명성과 영예 이외에 이 세상에는 유회마저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