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티키호 표류기(4/12)
4, 목숨을 함께 할 친구들
뗏목배에 함께 탈 멤버는 헤이에르달을 포함하여 6명이다. 그들은 지인이기도 하고 탐험가 클럽의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 우연히 알게 된 친구도 있었으나 모두가 의기투합하였다.
헤르만은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청년으로 기상관측이나 기계측정에 뛰어났다. 이릭은 화가로서 항해기술에도 뛰어났었다. 구누드와 돌슈타인은 무선 전문가였다 벵구는 단 한 사람의 스웨덴 사람이었으나 체격이 뛰어난 과학자였다. 노르웨이인 5명 스웨덴인 1명이 우리 콘티키호의 멤버이다.
콘티키호의 멤버들은 좌로부터 3번째가 헤이에르달이다. 그들에게 공통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원 호기심이 왕성하고 진리를 구명하는 데는 타협을 허용하지 않고 커다란 야심과 낭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장대한 실험에 대하여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장관은 <그만 둘 것이면 지금이다. 그대들이 죽으면 가족들이 슬퍼할 것이 아닌가.>하고 말하고 한 제독은 뗏목배를 한 번 보고서는 <이것으로는 뗏목배가 너무 작다. 태평양의 큰 파도에 들어 올려지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전문가 여러분도 <바루자는 물을 빨아들여 목적한 4분의 1도 가기 전에 잠겨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항일이 가까워지자 투지보다는 싫은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불안이 그치지 않고 좋지 않은 생각이 마음을 약하게 하였다. 이럴 때 헤이에르달는 자신에게 물었다. 100년 전 쯤 옛날 고대 잉카인은 이 정도의 작은 배로 큰 바다 위를 출항한 것이다. 희망과 커다란 야심만이 그들의 에너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가? 더 자신을 가져라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며 맹세하였다.
준비는 다 되었다. 이것으로 무사히 해류를 타서 연연히 수 천 킬로 떨어진 섬까지 도착하게 될 것이 아닌가? 참으로 남미의 거석문화는 이리하여 바다를 건넌 것일까?
이리하여 1947년 4월 28일 장대한 실험은 개시되었다. 뗏목배의 이름은 <콘티키호>이다. 이것은 잉카의 태양신에 준하는 성스러운 명칭이다. 노리는 곳은 아득한 수평선 저 끝 폴리네시아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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