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갈릴레오 갈릴레이(이탈리아어 : Galileo Galilei)
이야기(1/8)
1, 개설
갈릴레오 갈릴레이(이탈리아어 : Galileo Galilei、1564-1642)는 16-17세기 이탈리아의 필렌체에서 활약한 이탈리아의 자연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이다.
근대과학적인 수법을 수립하는 데에 다대한 공헌으로 종종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고 또 천문학 분야에서의 공헌으로 <천문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특히 천문학자로서 망원경을 써서 천체를 관측하고 지동설을 실증했는데 종교재판에서 유죄 언도를 받았다.
그 시대의 유럽은 최대 최후의 종교전쟁이었던 30년 전쟁(1618-1648)의 한창인 때이고 또 몇 번이나 페스트가 유행하여 이탈리아도 분열 항쟁이 계속되던 중세와 근세의 과도기였다.
자연현상에 대하여 수학적 수법 및 사고 실험을 써서 다그치고 가설을 실험으로 검증한다는 갈리레오의 방법은(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의 방법을 새롭게 확립하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
천문학 분야에서는 스스로 개량한 갈레레오식 망원경을 써서 목성의 위성, 월면의 요철(크레이터), 태양의 흑점 등을 발견하고 <성계(星界)의 보고>(Sidereus Nuncius、1610년 간행)를 저술하였다. 1610년에 <토스카나대공( 이탈리아어 : Granducato di Toscana、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북이탈리아에 존재했던 국가) 부의 수학자>라는 (그 지역에서는) 명예로운 지위, 1611년에는 로마의 아카데미아 디 린체이(Accademia (Nazionale) dei Lincei)회원이 되었다.
주저인 『천문대화』(Dial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tolemaico e copernicano(1632)나 『신과학대화』Discorsi e dimostrazioni matematiche intorno a due nuove scienze attenenti alla meccanica(1638)는 어느 것이나 이탈리아인이 실제로 말하는 이탈리아어로 적고 있어서 생생한 대화식으로 쓴 책이다. 당시의 <학술서라는 라틴어로 쓴 것>이라는 학술적 전통의 껍질을 벗겼다. 그래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보이고 갈리레오 자신은 <새로운 지식>이라고 불렀던 현재의 자연과학에로의 이어지는 수법을 창시한 책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크스의 지동설을 관측에 의하여 실증하고 과학혁명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는데 이단이라 하여 고소당하여 로마교황청에 의한 종교재판이 1616년, 1636년 2회에 걸쳐 열렸다.
그 결과 그 학설은 이단이라고 판단되어 유죄가 되고 종신금고 형의 언도를 받았다. 그것은 과학이 종교에 의하여 억압된 최후의 일이었다.
그 후 차차 신발견이 이어져서 과학혁명이 진전됨으로써 유럽에서의 과학의 시대가 전개되는 단서가 되었다.
갈릴레오가 활동한 17세기 전반은 프란시스 베이콘(영어: Francis Bacon, 1561-1626, 영국의 철학자, 신학자, 법학자, 정치가, 귀족)이나 르네 데카르트스(불어: René Descartes、1596- 1650,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합리주의 철학의 조, 근세철학의 조)의 활동이 겹치고 그가 죽은 1642년에는 뉴턴이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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