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러시아 혁명이 빚어낸 바이칼호의 비극

간천(澗泉) naganchun 2012. 2. 9. 06:35

 

러시아 혁명이 빚어낸 바이칼호의 비극

-역사에 숨겨진 비화-

 

 

 

 

바이칼호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중간에 위치하여 주위에는 깊은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초생달 모양의 거대한 호수이다. 길이는 640킬로미터이고 총면적은 31,500평방킬로미터이며 평균 깊이는 730미터나 된다. 이 호수로는 약 350 개의 강물이 흘러 들어온다.

이 호수의 수량은 북미대륙 5대호의 총수량에 맞먹는 수량이며 지구상의 전 담수의 2할 정도의 수량이며 투명도는 세계 최고라 한다.

한랭하기 때문에 영양소가 매우 부족한 곳이지만 세계 굴지의 생물다양성을 가진 장소이다. 용철갑상어, 바이칼해표 등 355속 1334종이 서식한다. 그 중 1017종은 고유종이다.

기후는 1월부터 5월까지는 호수면이 얼고 얼음의 두께는 70센티에서 115센티가 된다. 겨울에 최저 영하 19도이고 여름에는 14도까지 상승한다. 연간 강수량은 400밀리인데 여름에서 가을까지 비가 온다. 적설량은 많지 않다.

이처럼 바이칼호는 극한의 기후 조건하에 놓여있지만 이 얼음찬 호수는 시베리아의 진주라 할 만큼 아름답다.

 그런데 이 호수의 밑바닥에는 25만이라는 많은 수의 인간의 혼이 잠들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고 있지 않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바이칼호

 

 



바이칼호 모양                                         바이칼호 해표

 

 

제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진영으로서 독일군과 싸우고 있던 제정 러이사에 돌연 혁명이 일어나 로마노프왕조는 붕괴하고 말았다. 1917년 2월의 일이다.

이윽고 정권을 잡은 소비에트정부는 독일과 휴전협정을 맺고 거꾸로 러시아 국내에서 제정러시아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백군과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백군은 제정러시아의 알렉산더 콜차크(Alexander Kolchak) 제독이 지휘 하에 동우랄의 옴스크라는 도시를 점거하고 혁명군인 적군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1919년 11월에 마침내 점령당하고 말았다.

거기서 재기를 노리고 동쪽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목표지는 적군의 손이 미치지 않는 시베리아의 오지였다.

 

백군은 50만 명인데 거기에 제정시대의 귀족, 승려 등 망명객이 75만 명에 이르렀다. 그 중 25만 명은 여자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제정러시아를 부활시키기 위하여 군자금 약 500톤의 로마노프금화와 재보를 지니고 있었다.

기온은 연일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삭풍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눈보라가 사정없이 내려쳤다. 내뱉는 숨은 소리를 내면서 얼고 폐부는 서리에 막혀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눈앞에는 고드름이 달라붙고 울고 싶어도 눈물이 얼어서 렌즈처럼 앞을 가렸다.

행군이 시작되자마자 동사자가 발생했다.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그대로 버렸다. 매일 밤마다 동사자가 생겼다. 하룻밤 사이에 20만 명의 동사자가 생겼다.

 

군민을 합하여 125만 명의 대행렬은 적군에 쫓기듯이 죽음의 행군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목표하는 태평양 연안에 도달하기에는 8000킬로미터나 되는 광대한 시베리아를 횡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기온은 급강하하여 동장군이 내습하였다.

그래도 죽음의 행군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3개월이 지나서 처음 125만 명이었던 사람들이 25만 명이나 줄었다. 이윽고 연료도 바닥이 나고 운반에 중요 역할을 하던 말도 죽어갔다. 마침내 500톤의 금화도 버려야 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머지 25만 명의 사람들은 2000킬로나 떨어진 이루크스크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사람들 눈앞에는 얼어붙은 바이칼호가 가로 막았다. 얼어붙은 호수면은 반짝반짝 빛나고 두께는 3미터나 되었다. 저쪽 가까지는 80킬로미터 정도이다.

사람들은 최후의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바이칼호를 횡단하기로 하였다. 25만 명의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마치 망자의 행군처럼 보였다. 그 때 한파가 밀어닥친 것이었다. 눈보라가 사정없이 치고 극한의 한파가 밀려온 것이었다.

그 추위는 영하 70도까지 내려가서 털을 덮어쓰더라도 아무 소용이 되지 못하였다.

호수면 가운데 정도도 가지 못한 사이에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얼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동사하였다.

영하 70도의 극한 속에서도 25만 명의 죽음의 행렬은 계속하였다. 그러나 차례차례로 사람들은 얼어서 동사하고 말았다. 호수 면에는 동사자의 시체 위에 눈보라가 칠 뿐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새봄이 되어 눈이 녹게 될 무렵에는 호수의 얼음도 녹아서 병사나 여자나 아이들을 포함한 25만의 동사자의 시체는 바이칼 호수 밑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이리하여 125만 명은 모두 죽음을 맞았다. 인류의 역사상 이처럼 많은 사람이 동사한 예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