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은혜
추석을 맞으며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걸을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고, 또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간을 비롯한 고등 동물들은 출생 후 긴 양육 기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자립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
공자의 제자인 재여는 <3년상>이 너무 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3년상>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생애 초반 3년 동안 온 정성과 시간을 들여 돌보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그 슬픔을 표현하는 유교적 전통을 말한다.
재여는 3년이란 기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지만, 공자는 그 기간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이자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답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모의 보살핌 없이는 인간이 온전한 생명체로 성장하기 어려움을 시사한 것이다.
고등 동물일수록 양육 기간이 길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인간의 경우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생물학적 성숙도와 더불어 정신적, 사회적 성숙도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에 비해 출생 시 미성숙한 상태이며, 환경에 적응하고 배워가는 과정에서 부모의 지속적인 보호와 지도가 필수적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었더라면 인간의 문명은 지금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긴 양육 기간을 통해 우리는 언어를 배우고, 관계를 형성하며,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간다.
이런 맥락에서 부모의 은혜는 단순한 보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부모는 아이가 자라면서 겪는 수많은 위험과 어려움을 대신 감내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식이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육체적 돌봄뿐만 아니라, 정신적 지지와 애정 그리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과 관심 덕분에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립할 수 있다. 양육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었다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단순히 신체적 보호에 그쳤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인간 사회의 깊이 있는 유대와 사랑은 지금만큼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생육 기간이 길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부모의 은혜와 그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요소이다. 이러한 시간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더 넓은 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중요한 단계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의 은혜를 단순히 돌봄의 행위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 생명체가 온전히 세상에 뿌리내리도록 돕는 긴 과정이며, 그 속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삶의 지혜를 전수하고, 자식은 부모의 그늘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길을 찾는다.
어찌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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