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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베르나 폰 브라운 이야기(2/4)

간천(澗泉) naganchun 2024. 8. 7. 02:29

베르나 폰 브라운 이야기(2/4)

--인류를 달에 실어간 <아폴로계획>을 성공시킨 로켓의 아버지-

 

2,독일 시대

 

1) 학생시대

 

1930년에 베를린공과대학에 입학한 후 독일 우주여행협회에 가입하여 헤르만 오페르츠Hermann Oberth, 1894-1989, 독일 로켓공학자)의 액체연료 로켓엔진 시험을 도왔다.

공학사 학위를 받은 후 베를린대학에서 육군병기국의 바르타 도룬베르그Walter Robert Dornberger, 18951980, 독일출신 군인, 로켓기술자. 최종계급은 소장) 육군대위 밑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쿠마스도르프의 고체로켓시험장 근처에서 연구를 계속하여 2년 후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박사논문의 일부만이 공표되었고, 완전한 논문은 1960년에 공표되었다.

 

2), 미사일 개발

 

1934년 말까지 폰 브라운의 그룹은 2.4km 이상의 고도에 도달하는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후 독일 북부 발트해의 페네뮨데(Peenemünde)에 대규모 로켓 실험 시설이 건설되었다.

 

1943, 히틀러는 A-4 로켓을 "보복 무기"로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이 로켓은 나중에 V-2로 명명되어 194497일 유럽 서부에 발사되었다. 도른베르그는 로켓 개발 지휘관이 되고 폰 브라운은 기술부장이 되었다. 그들은 A-4 탄도미사일과 함께 액체 연료 로켓 엔진, 초음속 대공미사일 바사발 등을 개발했다.

 

3) V2로켓 발사

 

1943,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열세에 처하자, 히틀러는 A-4(또는 V-2) 로켓을 보복무기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폰 브라운 등의 그룹은 이 탄도미사일을 개발했고, 히틀러의 명령 14개월 후인 194497일 유럽 서부에 첫 발사되었다. 도른베르크는 육군의 로켓개발 지휘관으로, 폰 브라운은 기술부장으로서 A-4 로켓, 제트보조이륙용 액체연료 로켓엔진, 장거리 탄도미사일, 그리고 초음속 대공미사일 바사발 Wasserfall Ferngelenkte Flakrakete/원격조종식 지대공로켓을 개발했다.

 

4) 체포

 

나치 친위대(SS)와 게슈타포(국가비밀경찰)는 폰 브라운이 군사 무기의 개발보다 지구 궤도나 달로 향하는 로켓을 만드는 것에 우선하고 있다고 하여 그를 국가반역죄로 체포하였다.

폰 브라운의 죄목은 "더 큰 로켓 폭탄을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 개인적인 소망을 너무 많이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도른베르크는 "혹시 폰 브라운이 없으면 V-2 로켓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며, 그러면 당신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게슈타포를 설득하며 폰 브라운을 석방시키려 했다. 그러나 게슈타포는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히틀러가 직접 개입하여 폰 브라운을 겨우 석방시킬 수 있었다. 그때 히틀러는 "나도 그를 석방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