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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대

돌봄의 시대 38 유리창 너머의 꽃구경

간천(澗泉) naganchun 2025. 6. 21. 05:23

요양원은 어르신들에게 어떤 곳일까? 감옥일까, 낙원일까. 아마 그날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밖으로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병원에 갈 때, 보호자와 동행할 때, 혹은 예기치 못한 응급 상황에서만 비로소 요양원의 문턱을 넘는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일시적인 탈출에 불과하다.

 

요양보호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요양원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머물러야 한다. 가끔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 나가는 순간, 한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그 몇 초간의 체험이 하루 중 유일한 자연과의 만남일지도 모른다.

 

어르신들에게 자연은 더 멀리 있다. 그들에게 자연은 유리창 너머에 있다.

 

어떤 날은 봄이 찾아온 것을 창문 밖 벚꽃의 여린 분홍빛으로 알게 된다. 또 어떤 날은 창밖으로 불어오는 가을 바람이 나무들을 흔들며 단풍잎을 춤추게 한다. 어르신들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해가 쨍쨍한 날을 창문을 통해 본다. 유리창이 그들의 계절이다.

 

물론 요양원에서도 자연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2층에 마련된 나무 데크와 정원, 옥상에 있는 작은 텃밭과 꽃밭. 보호사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꽃을 만져보는 시간은 어르신들에게 특별한 하루가 된다. 옥상에서 자란 상추와 고추, 방울토마토는 어르신들의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간조차도 정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날들은 여전히 유리창 너머로만 자연을 느낄 뿐이다.

 

가끔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그들은 유리창 너머로 보는 이 자연을 어떻게 느낄까?

 

어떤 분들에게는 창밖의 풍경이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창구일 것이다. 벚꽃을 보며 한때 자식들과 소풍 갔던 봄날을 기억하거나, 쏟아지는 비를 보며 농사일로 바쁘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분들에게는 그저 아무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 그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의 일부일 뿐.

 

나 역시 가끔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본다. 그러다 문득 든다. 유리창 너머의 자연은 무엇일까? 우리가 자연을 직접 체험하는 것과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은 과연 무엇이 다른 걸까? 바람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풀 내음을 맡지 못한다고 해서, 자연이 주는 감각이 사라지는 걸까?

 

어쩌면 자연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뭇잎의 초록빛은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가을날 붉게 물든 단풍은 사라져가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쏟아지는 비는 우리의 고단함을 씻어내린다. 자연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는가와 상관없이,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쉼을 준다.

 

하지만 모든 어르신들이 유리창 너머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분들은 세상과의 연결을 이미 끊어버린 듯하다. 그들은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그들에게 자연은 과거 어느 시점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어르신들을 보며 생각한다. 자연은 단순히 바람, 비, 꽃, 나무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상태일지도. 우리가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에서 위안을 얻는다면, 그것은 충분히 자연과의 만남일 것이다.

요양원은 감옥일 수도, 낙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딘가, 어르신들이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자연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이 벚꽃이든, 비 내리는 창밖 풍경이든, 고요히 흐르는 구름이든. 그 작은 풍경이 어르신들에게 작은 치유의 순간을 선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