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은 "어르신을 섬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운영된다. 거의 모든 요양원이 이와 같은 홍보 문구를 사용하며, 어르신들에게 최상의 돌봄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요양원에서 실제로 일을 해보면, 이곳이 과연 어르신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지, 아니면 보호자를 위해 운영되는 곳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겉으로는 어르신을 위한 곳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보호자를 만족시키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 모습이 자주 드러난다.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들은 자주 보호자들의 방문을 받는다. 보호자들은 부모나 가족을 요양원에 맡기고 그들이 잘 돌봐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면회를 온다. 이때 보호자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면 요양원 전체가 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예를 들어, 보호자가 면회 시간에 도착했는데 어르신이 면회실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원장부터 시작해 국장, 사회복지사, 간호사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변명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리고 그 책임은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돌아간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보호자들의 요구가 최우선시되는 환경에서는 그들이 제대로 된 돌봄을 제공하기 어려워진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을 잘 돌보고자 하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만, 보호자들의 불만이 쏟아질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헌신이 평가절하되는 기분을 느낀다. 이로 인해 요양보호사들은 점차 지치고, 일에 대한 만족감과 사명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요양원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계속 억누르는 것이다. 어떤 어르신은 매일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간청하지만, 제1보호자인 며느리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요청은 무시된다. 어르신은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에게 연락하고자 하지만, 요양보호사들은 그 간절함을 그저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도,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상황은 어르신에게 심리적인 고통을 안겨준다. 자신이 자녀들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 수 있으며, 이는 어르신의 정서적 안정을 크게 해친다. 어르신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상실감은 단순히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무력감은 요양원에서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요양원에서는 종종 외부 강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특별한 행사를 마련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보여주기식 행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그저 자리에 앉아 멍하게 있는 동안, 사회복지사들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홍보 자료를 만든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어르신들이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는지 어떤지 실제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다.
더욱 황당한 상황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르신이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사진을 연출하는 경우다. 침상에 누워 있는 어르신에게 책을 들려주며 "독서하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반응이 없는 어르신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동영상을 찍는 등의 모습은 그저 보호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연출된 장면들은 어르신들이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왜곡하고, 요양원의 진정한 목적을 훼손한다.
보호자들은 종종 요양원에서 부모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가진다. 예를 들어, 어르신이 식사를 잘 하고 있는지, 양치질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지 등을 꼼꼼히 확인하며 요구를 한다. 이러한 요구는 어르신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당연히 중요하지만,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것은 요양보호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보호자들은 부모가 최고의 돌봄을 받고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요양보호사들이 이러한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보호자들이 원하는 것은 부모가 요양원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내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요양보호사들이 감당해야 할 업무의 양과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세심하게 돌보고자 노력하지만,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로 인해 모든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들은 요양원에서 부모가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하며, 요양원은 이를 위해 보여주기식 행사를 기획하고, 연출된 사진을 제공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요양원은 본래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호자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고자 하지만, 보호자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요양원의 보여주기식 운영 방침 속에서 그들의 업무는 더욱 힘들어진다. 요양원은 어르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보호자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요양원의 운영 방침과 보호자와의 소통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어르신들이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보호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을 돌보는 데 있어서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요양원이 진정으로 어르신을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보호자 중심의 운영 방식을 탈피하고, 어르신의 존엄성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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