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의 하루는 늘 예측 가능하면서도, 동시에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대부분의 시간은 조용하고 일정하게 흘러가지만, 어딘가에서 갑자기 번개 같은 일이 벌어진다. 번개는 기상 예보를 듣지 못한 날의 천둥처럼 찾아온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르신들의 마음속 어디에선가, 갑작스러운 신호로 터져 나온다.
양 어르신은 늘 조용하다. 무표정하고, 무관심하다. 화장실을 가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가끔 잠에 빠져든다. 우리가 인사를 건네면 희미한 미소를 보인다. 그 미소는 작고 고요해서 마치 우연히 찾아낸 보석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양 어르신도 어느 날 갑자기 변신한다.
그날은 비상구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상구는 보통 닫혀 있고, 그 앞은 쓰레기를 내다 놓는 공간이다. 양00 어르신의 방은 복도의 끝, 비상구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하지만 어르신은 꿋꿋이 그곳에 앉아 문지기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딸이 오기로 했어. 딸이 곧 올 거야. 여기 있어야 문을 열어줄 수 있어."
말투는 단호했고,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딸이 맛있는 걸 가져올 거라며, 밥을 못 먹었다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꿈쩍하지 않는 고집은 마치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라는 듯했다.
이 고요한 어르신이 갑자기 보여주는 이 단호함과 긴박함.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확신에 놀라면서도, 나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날은 더욱 극적이다. 평소엔 방 안에서 조용히 계시는 양 어르신이 갑자기 가방을 싸기 시작한다. 옷가지며 신발이며, 심지어 실내화까지도 챙겨 넣는다. 그 가방은 홈플러스에서 산 비닐 가방이다. 그리고 한 마디 한다.
"집에 가야 해."
이 말을 들으면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다시 그 번개가 친 것이다. 나는 달래야 한다. "어르신, 여긴 집이에요." 하지만 그 말은 그 순간의 어르신에게 닿지 않는다. 그 뇌리에 번쩍 스친 신호는 내가 내뱉는 어떤 논리보다 강력하다. 어르신의 표정은 당혹스러움과 진지함이 뒤섞여 있다. 내가 왜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그 간절함을 왜 못 알아보는지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나는 그저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이 번개가 지나가길.
그러던 어느 날, 양 어르신이 휠체어를 밀며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다시 번개가 친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어디 가세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운동, 운동, 운동."
그제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물리치료사가 권한 복도 걷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껏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돌아오셨구나."
이렇게 번개 같은 순간들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이런 순간들이 단순한 이상 행동이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순간이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진실한 시간이다. 우리는 차분히 대응하며, 그들에게서 조금씩 이야기를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번개의 순간마다 어르신들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듯 보인다. 그 표정은 점점 더 진지해지고, 어딘가 멀어진다.
양 어르신과 심 어르신이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날도 생각난다. 양 어르신은 자신이 아들이 정형외과 의사라며, 집이 여러 채 있다고 말했다. 심 어르신은 경남 합천에서 혼자 살다 자식들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했다. 두 분은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그 모습은 평화로웠고, 너무나도 정상적이었다.
그런데 어르신들의 "정상적인" 순간과 "비정상적인" 순간은 이렇게 교차한다. 깜짝 번개처럼 찾아오는 행동의 변화는 우리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신호다.
이 번개는 어르신들에게서 무엇인가를 앗아가는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풍부했는지를 엿보게 한다. 그들이 번개를 맞아 빛나고, 꺼지고,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며 매번 작은 충격과 깨달음을 얻는다.
그들은 여전히 여기에 있지만, 어쩌면 점점 더 먼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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