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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대

돌봄의 시대 33 이거해라 저거해라, 뭐해라 뭐해라 모두 요양보호사가 해라!!

간천(澗泉) naganchun 2025. 5. 31. 07:45

요양보호사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이거 좀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아니, 솔직히 말해보자. 이건 부탁이 아니다. 명령이다. 부탁은 상대를 배려하는 뉘앙스라도 있지만, 여기서의 요청은 단호하다. “당연히 네가 해야지. 네 일인데.”

 

요양원은 마치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 같다. 등장인물은 많고,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맨 꼭대기에는 원장이 있고, 그 아래 사무국장이 있고, 사회복지사가 있고, 영양사가 있고, 물리치료사가 있고, 주방 직원, 설비 담당자, 세탁 담당자가 있다. 그리고 그 밑에, 가장 밑바닥에 요양보호사가 있다.

 

요양보호사는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서 모든 무게를 떠받치는 존재다. 눈에 띄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그저 해야 할 일만 끊임없이 떠안는 그런 존재다.

 

어느 날의 시작은 이렇게 된다.

 

“어르신 문 닫아 주세요. 춥잖아요.”

“어르신 눈곱 좀 닦아드리세요.”

“기저귀 왜 이렇게 썼어요? 두 개 쓰랬지 세 개 썼어요?”

 

아니, 문 닫고 눈곱 닦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건 당연히 내 일이겠지. 그런데 거기에 또 잔소리가 붙는다. **"왜 이렇게 했냐"** 부터 시작해서 **"왜 저렇게 안 했냐"** 까지. 심지어 내가 왜 한 건지도 모르는 일을 두고도 뭐라 한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의 몸 하나하나를 돌보는 사람이자, 보호자와 시설 직원들 사이의 쿠션 같은 존재다. 어르신의 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보고해야 한다. 아니, 보고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어르신 엉덩이가 짓물렀어요? 왜 이제 말하셨어요?”**

이건 내가 짓문들게 한 것도 아닌데도, 내가 문제다.

 

반대로 어르신 상태가 좋다며 보호자가 칭찬을 하면?

“어르신, 그래도 우리 복지사가 잘 챙겨서 그렇죠. 참 프로그램도 잘 운영하고...”

칭찬은 복지사와 시설의 몫이다. 우리는 칭찬받는 역할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해라. 그러나 고생은 티 내지 말아라.

 

“부저 울리면 바로 가세요!”

“어르신 거실로 모셔주세요. 체조 시작합니다.”

“체조 도울 사람 손들어 주세요. 아, 요양보호사가 있죠.”

“프로그램 할 때 도와주시고, 사진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세요.”

“침대에 계신 분들도 책 읽어주세요. 와상 어르신도 책을 듣고 싶을 수 있잖아요?”

 

매일이 이런 식이다. 부르면 가고, 오라면 오고, 하라면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요양보호사 없으면 시설이 안 굴러간다니까.”

그건 맞다. 우리는 없으면 시설은 굴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요양보호사를 대하는 태도는 뭔가 이상하다.

 

다른 직원들이 하는 말도 참 재밌다.

“복지사님 혼자 힘드니까 프로그램 좀 도와드려요.”

“어르신 물 떨어졌네요. 보충해 주세요.”

“왜 면회 시에 어르신 옷을 그렇게 입혔어요?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누가 보면 우리만 한가한 줄 알겠다.

 

아, 또 CCTV 말이다. 기저귀 교체할 때 파티션 꼭 설치하라는데, 어르신 한 분 케어할 시간도 빠듯한데 매번 그거 설치하고 확인하고... 웃음이 절로 난다. 아니,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한숨 섞인 헛웃음이다.

 

“그래도 요양보호사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맞아. 그런데 왜 이렇게 대우는...”

“몰라. 그냥 그렇지 뭐.”

 

요양보호사들끼리도 뒷담화가 없다면 하루를 버티기 힘들다. 서로 짜증내고 웃고 하소연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도 안 한다고 할 순 없다. 우리가 없으면 정말로 굴러가지 않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요양원의 기둥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둥에 페인트를 칠해주는 사람도 없고, 청소를 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계속 무게를 떠받치기만 한다.

 

그래도 내일도 출근한다. 왜냐하면, 어르신들이 기다리니까.

“아이고, 오늘도 고생 많다.”

이 한마디가 들리면, 또 하루를 버텨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