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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30,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 1468) 이야기(3)

간천(澗泉) naganchun 2025. 2. 19. 02:55

30,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 1468) 이야기(3)

==활판인쇄술을 발명하여 현대인쇄법의 기초를 구축했다.==

 

 

 

5, 인쇄업

 

1439, 스트라스부르 법원의 재판 기록에서 구텐베르크가 투자자를 모아 인쇄업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이때 그는 자신의 야금 기술을 활용하여 금속활자를 개발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1440년대의 구텐베르크의 행적은 불확실하지만, 1440년대 중반에 시집을 출판한 것으로 여겨지며, 인쇄업을 지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1448, 구텐베르크는 그의 누이가 세상을 떠난 후 고향에 남겨진 집을 상속받아 마인츠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자신이 개발한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이 사업이 유럽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

 

구텐베르크는 자신이 발명한 인쇄기에 대한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항상 혼자서 인쇄기를 제작하고 개량했으며, 제작 기술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기록이 많지 않지만, 당시 구텐베르크는 인쇄기 개발을 위한 자금 마련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마인츠의 부유한 금세공업자였던 요한 푸스트에게 돈을 빌렸다고 전해진다. 푸스트에게 돈을 빌리는 대신, 구텐베르크는 푸스트와 일종의 동업 형태로 인쇄소를 설립하였다.

 

1450년경, 그가 새로운 인쇄 방식으로 처음 인쇄한 책은 당시 라틴어 교재로 널리 사용되던 문법학(Ars Grammatica)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인츠에 있는 장크트 야코프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구텐베르크에게 면죄부 2,000장을 인쇄해 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교회에서 발행하는 면죄부는 영구적인 효력을 가지지 않았으며, 일정한 기한이 있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발행되었고, 교회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종이와 활자가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면죄부는 인쇄 품질이 상당히 뛰어나 교회에서도 만족하였으며, 이로 인해 교회의 주문이 계속 이어졌다. 교회와 거래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구텐베르크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교회를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교회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일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