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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세계의 과학자 30,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 1468) 이야기(2)

간천(澗泉) naganchun 2025. 2. 18. 03:06

30,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68) 이야기(2)

==활판인쇄술을 발명하여 현대인쇄법의 기초를 구축했다.==

 

 

3, 기득권자와 신흥세력의 대립과 폰지사기

 

당시 마인츠에서는 기존의 권리를 가진 귀족들과 신흥 세력인 길드가 대립하고 있었다. 도시는 부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연금 제도를 운영했으나, 그 실상은 폰지사기영어: Ponzi scheme, 부자사기의 일종으로 출자하면 자금을 운용하여 그 이익을 출자자에게 준다.”하고 속이는 것)였다. 이 폰지 방식의 연금은 고객층을 계속해서 확대해야 유지될 수 있었으나, 고객층이 마인츠 시민에 한정된 상황에서는 당연히 오래 지속될 수 없었고, 궁지에 몰린 도시가 세금을 올리자 길드는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이에 분개한 귀족들이 도시 외곽의 사유지로 이주해 버리자 도시는 파산하고 말았다. 구텐베르크도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진행되던 중인 1429년에 자신에게 지급된 연금이 절반으로 줄어들자 도시를 떠나버렸다.

 

4, 폰지사기의 승소와 거울 장사

 

1434, 스트라스부르에서 그는 소송을 통해 마인츠시 당국으로부터 받지 못했던 연금을 모두 받았고, 그렇게 준비한 자금으로 사업을 하나 계획하게 된다. 당시 독일 지역에서는 7년마다 아헨 대성당을 방문하여 네 가지 성유물을 직접 보는 순례 행사가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성유물을 관람할 때 작은 거울(Spiegeln)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성유물에서 방출되는 <>을 받는 것이 유행이었다. 사람들은 거울에 담긴 빛이 나중에 거울을 볼 때마다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다음 순례 행사는 1439년에 예정되어 있었으며, 구텐베르크는 거울을 만들어 아헨으로 가는 길의 순례자들에게 팔 생각이었다.

그 나름의 참신한 아이디어였으나 1438년의 역병이 퍼지면서 이듬해 열릴 예정이었던 행사가 연기되었고, 당연히 구텐베르크의 사업도 몰락하고 말았다. 다만, 이 거울 사업과는 별개로 스트라스부르로 이주한 이후 이미 인쇄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