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보고
미나리라는 채소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특유의 향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서양산 채소 중에 샐러리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몸에 좋은 식물이다. 엽록소 그 자체가 줄기줄기 뚱뚱 뭉쳐진 채소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들.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 미나리의 소개 글이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탈 것이라고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도 이 영화에 대해서 극찬을 하는 홍보내용들을 접하면서 왠지 꼭 봐두어야 할 것 같아서 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해서 거의 인적이 드문 영화관에서 한적하게 마스크를 쓰고 말이다.
왜 이다지도 영화의 노벨상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는 등 난리일까?
소재 때문일까, 스토리때문일까, 배우들의 연기 때문일까, 영상미 때문일까.
감독이 특징적이어서 그럴까. 미국사회의 이민자들을 다루어서일까. 등등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영화를 봐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무슨 근거로 이 영화에 갈채를 보내는 것일까.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영화에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20여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은 이곳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간다는 것이다. 물론 왔다 갔다 하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되지만, 이 땅에서 살았던 희노애락을 모두 정리하고 전혀 새로운 땅에서 다시 승부를 걸어보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과거를 청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비행기 값도 있어야 하고 짐도 부쳐야 하고 그곳에서 정착할 목돈도 있어야 한다. 아예 그럴 돈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곳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왜 굳이 낯선 땅으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이곳에서의 인간관계와 삶이 견딜 수 없고 피하고 싶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동안 일해 왔던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서, 아예 밑바탕에서부터 일을 하더라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이다.
알던 사람들 관계의 이런 저런 속박과 피곤함,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서, 나를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들을 가는 것 아닐까. 세탁소에서 일하고 접시닦이를 하고 네일 샵에서 일하고 안마 마사지를 해주고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해야 견딜 수 있어서가 아닐까. 그 미국이라는 곳에서는 그런 일을 하더라도 힘들지만 주변 사람들 눈치 별로 보지 않고도 도전하고 감당하고 견디어 낼 수 있겠다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편견과 눈치. 속박.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피하고 싶은 것.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해서 다시 생을 이어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우리는 과연 모든 관계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영화 속에서도 나온다. 미국 땅에서도 캘리포니아 도시를 떠나 아칸소라는 시골에 가서 살게 되면서 왠지 쓸쓸하다. 그래서 교회를 찾는다. 지역사회의 정이 그리운 것도 있었겠다.
새로운 일터에 갔는데 그곳에는 한국인 이민자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다른 곳에서 살다가 그곳으로 왔다. 그곳에서 살 때 다니던 교회를 떠나고 싶어서라고 한다.
정이 그리워 관계를 맺지만, 다시 그 관계는 속박이 되고 불편해지고 못견뎌디게 되고, 이겨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렇게 반복이 된다. 그러나 어쨌든 어디든 뿌리를 내려서 생을 살아 나가야 한다.
김훈은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에는 미나리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미나리는 발랄하고 선명하다. ... 봄 미나리를 고추장에 찍어서 날로 먹으면서,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과 전혀 다른,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해주는 전혀 새로운 날들이 우리 앞에 예비되어 있음을 안다.
라고.
우리를 새롭게 해주는 전혀 새로운 날들이 우리 앞에 예비되어 있다. 고.
하지만 매번 새로운 것만 찾아 살 수 있을까. 깊이 오래 오래 견디어내는 것도 익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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