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나와 너와 함께 알 수 없다(내편 제물론)
장자는 다시 논의를 진행한다. 실제로 우리는 논의는 하지만 최후에 그 논의가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제 3자는 아무 데도 없지 않은가. 가령 나하고 당신이 논의를 한다. 당신이 나한테 이겼고, 나는 당신한테 졌다는 일이 있어도, 과연 당신이 좋고 나는 나쁜가. 혹은 그 반대인가. 이것을 판단하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다.
판단자는 어떻게 생각해도 세상에서는 네 개의 경우밖에 생각되지 아니한다. 갑과 을이 쟁론하는 경우, 첫째는 갑과 을에게 같은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한다. 둘째는 갑과 을에게 다른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한다. 셋째는 갑에게 같은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한다. 넷째 을에게 같은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한다. 이 네 가지이다. 그러나 첫째의 갑과 을에게 같은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하면 그 판단하게 하는 원래의 갑과 을과는 지금 다투고 있으므로 이것은 판단이 안 된다. 다음 갑과 을에게 다른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하면 이것은 갑과 을 사이에 공통점을 가지지 않으므로 이것은 마치 길고 짧은 것을 겨루는 데, 무겁고 가벼운 것을 다는 저울을 쓰는 것과 같은 것으로 공통점을 가지지 않으므로 판단이 안 된다. 그러면 갑에게 같은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하면 이는 갑에게 한편이 되기 때문에 판단이 안 된다. 을에게 같은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하면 이것은 을에게 한편이 되기 때문에 판단이 안 된다.
결국 갑을의 논의를 판단하게 하는 것은 네 가지밖에 없고, 그러나 네 가지의 각각이 판단이 안 된다고 하면, 세상에는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 장자의 논법이다. 이 논의는 복잡하고, 논리상의 오류도 있을듯하지만 어떻든 장자는 그것을 가지고 “가함과 불가함은 일관된 것이다.”라는 입장임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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