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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솔로몬의 신전과 재보의 비밀

간천(澗泉) naganchun 2009. 5. 30. 15:35

 

솔로몬의 신전과 재보의 비밀

 

 

 

 

솔로몬의 신전

 

솔로몬 신전의 내부

 

지금부터 3 천 년 전쯤 전에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BC1035~BC925)은 부왕인 다윗 왕으로부터 금 10만 달란트와 은 100만 달란트 그리고 수많은 보석 등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솔로몬의 영화라고 했던 세계의 부를 독점했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호화로움을 자랑하고 모든 사치를 다해서 신전을 건조하였다.

그 신전은 금, 은, 보석류를 아낌없이 사용하였고, 건물 전체는 번쩍이는 백대리석으로 되어있었다. 그 신전이 얼마나 굉장한 것이었는지는 구약성서(열왕기상 6,7,8장 / 역대하 3,4,5,6장) 8쪽이나 써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신전 입구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섰고 문에는 멋진 상아가 끼워 있고 주조한 거대한 청동제 기둥이 즐비하게 섰고, 황금 그릇이나 화려하게 장식된 돌이 무수히 배치되어 있었다. 모든 지붕은 황금 판으로 덮여 있어서 그 번쩍거림은 눈이 부셔서 실눈을 하지 않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신전 안으로 들어서면 벽 일면은 괄목할만한 섬세한 기법으로 꽃들이 조각되어 있어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규모, 호화로움, 아름다움 어느 면으로 보아도 세계의 어떤 건축물도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신전 내부는 벽으로 배전(拜殿)과 본전(本殿)으로 나누어졌는데 본전에는 계약의 상자가 안치되어 있었다. 그 상자 위에는 5미터 전후의 2개의 게루빔이라 하는 날개가 달린 수소(雄牛)가 날개를 넓게 펼치고 있었다 한다.

 

솔로몬 왕의 호화로운 생활

 

솔로몬 왕은 그 밖에 자신을 위하여 크고 작은 신전을 지어서 7백 명 이상 있었다는 왕비들과 함께 살았다. 후궁까지 합치면 천명 이상의 미인에 둘러싸인 매일의 생활이었다.

그 많은 왕비들 중에서도 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딸이 특히 마음에 들어했는데, 그녀는 지참금 대신에 이집트의 영지였던 게세르시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게세르시는 파레스티나 최대의 상업도시로 영지가 증가된 위에다 거기서 가져오는 이익은 막대한 것이었다.

그는 결코 만족해하는 일이 없이 무한으로 왕국의 물질적인 번영을 목표로 자국의 지리적인 조건을 이용하여 주변국과의 교역으로 부를 축적해 갔다. 그 부는 거액이라서 예루살렘은 그 때마다 확장되어 더 넓어지고 훌륭해져 갔다.

솔로몬의 생활에서도 실로 호화의 극치를 이룬 것이었다. 그는 상아로 만든 눈부신 황금 옥좌에 앉고, 식사의 식기는 모두 순금으로 번쩍거렸다.

솔로몬의 명성은 이윽고 세계로 알려지고 예루살렘의 번영은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펴져 갔다.

멀리 찾아온 시바 여왕이 이들 신전의 장려함을 가까이서 보고 소문에서 듣던 것보다 실제로 와서 보니까 그 진실은 반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한다.

 

솔로몬 왕의 재산은 얼마나 되었나

 

도대체 솔로몬 왕의 재산은 얼마나 되었을까. 솔로몬이 소유한 황금은 10만 3천 탈란트(금 1탈란트는 49Kg) 은 1백만 7천 탈란트(은 1탈란트는 62Kg) 그리고 꽤 많은 보석류였다고 한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황금 5천 톤, 은 6만 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보석이 산을 이루었다. 이것은 엄청난 재산이다.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수자여서 멀미가 날 정도이다.

그의 신전은 호화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윗왕의 유지를 받은 솔로몬이 성지 예루살렘에 그 계약의 상자를 안치하기 위한 대 기념비이기도 하였다.

 

아브라함 바위 위의 돔

 

 

계약의 상자에는 모세의 십계를 조각한 석판이 수납되어 있었다. 또 그 계약의 상자가 놓인 장소는 아브라함의 바위라 일컬어지는 화강암이 있었다. 그 바위는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마음을 시험하려고 그의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심에 따라 아브라함은 그 바위 위에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울면서 신에게 바치려 한 장소로 가장 신성한 장소라고 하게 되었다. 신전은 마치 이 성스러운 장소를 건설 지점으로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솔로몬의 신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기고 BC 967년에 완성하자마자 전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의 표적이 되었던 곳이다.

 

솔로몬 왕의 죽음과 재보의 행방

 

그런데 50년쯤 후에 솔로몬이 죽자 왕위 계승 문제로 북과 남으로 분열 되고 말았다. 그 후 BC8세기에 북국(이스라엘)은 잔인하기로 이름 난 앗시리아 사람들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이 앗시리아 사람은 뛰어난 철제 무기와 강한 활잡이로 약탈 원정을 되풀이하기로 유명하다.

유일하게 남은 남국(유태)도 BC6세기에 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브가도네자르왕에 의하여 멸망하고 80만의 주민은 거의 노예로서 연행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멀리 이집트에서 모세에 의하여 탈출하여 한 때 세계에 이름을 떨치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후에는 고난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 때 솔로몬 신전도 파괴되었는데 신성한 장소에 안치 되었던 계약의 상자는 그들 손에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것은 솔로몬의 거액의 재보와 함께 일찍이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이다. 

전설에는 상자를 지키는 게루빔이 가져갔다고 하지만 사실은 신전을 섬기던 사제들이 이렇게 될 것을 예견하고 미리 준비해 둔 비밀 장소에 숨긴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밀 장소는 아브라함의 바위 밑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이 바위 밑은 빈 동굴이라서 두드리면 밑바닥에서 둔한 울림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2천 5백년 간 모세의 십계를 새긴 석판과 그것을 담은 계약의 상자가 솔로몬의 엄청난 재보와 함께 이 바위 밑에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후 이 바위는 3대종교로서는 성지라 하여 점점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중세에 시작되었던 십자군 원정으로부터 오늘 날의 중동 전쟁까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와의 대립은 모두 이 바위가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도굴군의 등장

 

한편 아브라함 바위 밑에는 공동이 있어 솔로몬의 거액의 재보와 모세의 십계를 새긴 석판을 담은 계약의 상자가 함께 감추어져있다는 소문은 모험가들이나 일획천금을 노리는 사람들 마음을 간질이고 있었다. 그러나 3대 종교의 가장 신성한 장소라 하는 바위의 돔에 들어가거나 바위 밑을 파는 일은 도저히 허용되지 않고 만일 들키면 능지처참 당할 위험한 행위이다. 그러나 금세기에 호기심과 야심에 찬 모험가가 그 일에 도전했다.

어느 영국 모험가는 뇌물을 써서 수비자를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밤중이 되면 몰래 바위의 돔 안에 들여 넣어 주었다. 삽, 곡괭이, 바구니 등을 가지고 들어간 그들은 아브라함의 바위 옆에 있는 초석을 부수고 밤새 구멍을 팠다. 그래서 새벽이 되자 구멍을 원래대로 고쳐두었다. 그 때 파낸 흙은 바구니에 넣어 밖으로 내쳤다. 이러한 방법을 되풀이하여 며칠을 파는 사이에 목적이 달성될 듯 보였다. 사실 8일째 아침 일찍 일어난 승려에게 들키고 말았다. 승려는 도둑이 들었다고 큰 소리로 외치자 이 소리를 들은 다른 곳 승려들이 곤봉이나 단검을 들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살기등등한 이들에게 잡히면 능지처참 당할 것이 분명하다. 영국 사람들은 연장을 다 버리고 죽을힘을 다하여 도망쳤다.

이후 바위의 돔 감시는 더 엄해지고 가까이 가는 것조차 못하게 되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미국 모험가가 이 문제에 도전했다. 그들은 사실을 세밀히 조사하여 예루살렘 밖에 있는 골짜기 동굴에 3천 년 전 갱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것은 바위의 돔 바로 밑에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갱도에는 샘이 있고 고대 이스라엘 병사들이 자주 이용하였다는 기록도 남아있었다. 그들은 삽과 괭이와 바구니를 가지고 손전등에 의지하여 캄캄한 갱도 안으로 조심조심 들어갔다. 몇 십 미터 들어가자

갱도는 위로 비탈지고 또 100여 미터 들어가자 갱도는 막히고 말았다. 그 대신에 그곳에는 계단이 되어 있고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계단은 몇 계단 올라가자 토사로 완전히 막혀 있었다.

그들은 바위 바로 밑에 와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필사적으로 파내었으나 계속 토사가 나오고 지하수도 흘러나와서 위험하기도 하여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