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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자로(子路)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13. 6. 29. 07:09

 

 

자로(子路) 이야기

-공문십철의 한 사람-

 

 

1. 자로가 공자와의 만남

자로(子路)는 원래 깡패의 무리였다. 공자가 명성을 떨치는 것을 못 마땅히 생각하여 돼지와 닭을 끌어 모아 시위를 하면서 공자의 강의를 방해하려 했었다. 그러자 공자와 자로는 문답을 하게 되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로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검을 좋아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학문은 어떠한가?” 자로가 대답하기를 ”학문은 쓸모가 없다.“

공자가 말하기를 ”임금에게 간하는 신하가 없다면 바른 것을 잃게 되고, 선비가 가르쳐주는 벗이 없으면 듣는 것을 잃게 되고, 나무도 먹줄로 바르게 되고, 말도 채찍으로, 활도 도지개(활을 바로 잡는 틀)가 필요한 것처럼 사람에게도 방자한 성정을 바로잡는 교학이 아무래도 필요한 것이다.“

자로가 말하기를 “남산의 대나무는 바로잡아주지 않아도 자연히 곧고, 잘라서 쓰면 제아무리 두꺼운 가죽이라도 뚫는다고 한다. 하늘이 준 재능이 있는 사람은 무슨 배울 필요가 있겠는가?”

공자가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남산의 대나무에 날개를 달고, 촉을 붙여서 갈면 단순히 가죽을 뚫을 뿐이겠는가?” 하고 학문의 필요함을 설득하자 자로는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하고 공자의 문하가 되었다.(공자가어)

 

2. 자로가 공자의 제자가 도다.

자로는 단번에 공자를 존경하고 사모했다. 길에서 공자에 대한 악담을 하는 자가 있으면 뺨을 갈겼다. 끝내는 자로의 얼굴만 보아도 사람들은 입을 다물게 되었다. 물론 공자는 자꾸 말렸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1년 후에는 공자는 웃으며 “자로가 제자가 되고서는 나에 대한 악담이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로는 음악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다. 공자가 “자로가 연주하는 슬은 나의 집에는 맞지 않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로를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자로는 예를 들어서 말한다면 객실까지는 올라갔으나 아직 안방에는 들지 못한 상태이다. 너희들은 아직 객실까지도 가지 못하지 않았느냐?” 하고 위로하였다.

공자의 제자 중에는 안회라든지 자공 같은 훌륭한 제자가 있었지만, 가장 사랑했던 제자가 자로였던 듯하다.

공자가 “도의 서지 않은 나라에 있기보다 떼배를 타고서 바다로 나가고 싶다. 그 때 곧바로 따라올 사람은 자로 정도일까?”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로는 기뻐하여 득의연했다고 한다. 그러자 공자는 “용기로 말하자면 자로는 나보다도 용감하지만 아직 떼배를 만들 재료마저도 준비되지 않았단다.” 하고 말했다.

자로는 공자가 벼슬하기를 권했지만 주유천하의 유세 여행에 따라나섰다. 그래서 어째서 이렇게 훌륭한 스승님이 이처럼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일행이 진(陳)나라와 초(楚)나라의 국경에서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자로는 “군자도 궁지에 빠지는 일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자라고 궁지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궁지에 빠졌다고 해서 마음의 안정을 잃게 되면 그것은 소인과 다를 것이 없다.‘(위령공2) 이 말씀에 일행은 위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공자가 자로를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양화8)

“여섯 가지 미덕에도 학문을 하지 않으면 생기는 여섯 가지 폐단이 있다.”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을 좋아하면서도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것은 인이 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변질되어 어리석음이 되고 만다.(好仁不好學, 其蔽也愚), 지로써 아는 것만 좋아하고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는 것이 되지 못하고 허황된 것이 되고 만다.(好知不好學, 其蔽也蕩), 믿음을 좋아하여도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믿음이 도리어 사람을 해치는 결과가 되고 만다.(好信不好學. 其蔽也賊), 정직함을 좋아하면서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는 불필요하게 서로를 구속하게 된다.(好直不好學, 其蔽也絞), 용기를 좋아하면서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질서를 파괴하는 만용이 되고 만다.(好勇不好學. 其蔽也亂), 강함을 좋아하면서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는 미치광이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만다.(好剛不好學, 其蔽也狂)”

자로는 가르침을 받으면 바로 받아들여서 실천하려 애를 썼고, 실천하기 전에 새로운 가르침을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한 번 승낙한 일은 다음 날로 미루지 않는 성격이었다. 이렇게 순진 용맹한 자로는 공자라는 좋은 스승을 만나서 처음으로 대과가 없었을 것이다.

 

3. 공자의 자로에 대한 예언

논어의 선진편 13에는 “제자들이 공자를 모시고 옆에 앉아 있었다. 민자건은 퍽 조심스러워 보였고, 자로는 백절불굴의 굳센 모습을 하고 있으며, 염유와 자공은 의젓한 태도로 있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공자도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자로의 그 같은 태도에 대해서 유와 같은 성격으로서는 끝내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4. 자로의 죽음

제자 자로와 자고(子羔)는 공자의 추천에 의하여 자고는 출공에게 벼슬하고, 자로는 대부인 공리(孔悝)에게 벼슬 하였었다. 이때에 위나라의 왕위를 다투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위나라의 출공의 조부 영공(靈公)이 죽자 후계자인 태자가 있었는데 그는 영공의 총희인 남자(南子)와 사이가 나빠서 죽음을 당할 처지에 있어서 타국에 망명 중이었다. 그래서 손자를 세워서 후계를 잇게 했는데, 이가 출공이다. 출공이 왕위에 올라 12년이 되었을 때 그 아버지인 태자가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난을 일으켰다. 출공은 난을 피하여 노나라로 망명하고 그는 들어와서 왕위에 오르니 그가 장공(莊公)이다.

난이 일어났을 때 자로는 성외에 있었는데, 난이 일었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에 이르렀을 때에 자고는 성문을 나가려고 하는 데서 만났다. 자고가 말하기를 “출공은 망명하였다. 성문은 닫혔다. 당신은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난에 같이 휩쓸릴 필요는 없다.” 고 말하자 자로는 “녹을 받는 몸이 주군이 난을 당했는데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는 마침 사자가 있어서 성문이 열리는 바람에 따라 들어갔다. 마침 자로의 주군인 공리는 태자와 함께 대에 올라 있었다. 원래 공리는 태자의 입국에 협력하고 있었는데 무력행사에는 반대였다. 그런데 이때는 사이가 나빠져서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여있었다. 자로는 말하기를 “태자는 공리를 어떻게 처분하려 하십니까? 내가 대신 죽이겠습니다.”하고 말했지만 태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자로는 대에 불을 질러서 위협하려 했다. 태자는 무서워서 대를 내려왔다. 이때 태자의 하수인들이 자로를 쳐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갓 끈이 잘라졌다. 자로는 “군자는 죽어도 관을 벗지 않는다.”하고는 갓끈을 바로 매고 죽었다.

공자는 위나라의 난 소식을 듣고, “자고는 돌아오겠지만, 자로는 죽을 것이다.”하고 말하였는데 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려 슬퍼하였다. 이때 공자는 73세이고 자로는 6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