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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고대인의 돌 다루는 기술의 수수께끼

간천(澗泉) naganchun 2012. 10. 11. 05:51

 

고대인의 돌 다루는 기술의 수수께끼

 

 

 

고대에 무거운 돌을 어떻게 자르고 운반했을까?

 

오늘 날의 광대한 건설 현장이나 채석장에서는 거대한 기계를 써서 채굴, 절단, 인양하는 일을 한다. 인간이 만든 이들 기계는 최신의 유압기술로 수 천 명분의 일을 한다. 이런 기계가 없어서는 현대의 고층빌딩은 건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 천 년 전 고대문명은 같은 일을 해내었다. 거대한 돌을 써서 기념비나 신전을 세웠다. 쓰인 거석의 대부분은 100톤이 넘고, 현대의 기술자로서도 취급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수천 년 전 사람들은 강한 바위에서 돌을 잘라내고 몇 Km나 먼 거리를 운반하고 정확한 장소에 쌓아놓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해낸 것일까?고고학자의 다수가 말하듯이 망치나 끌, 동선으로 거대한 석재를 절단한 것일까? 도르래 장치도 없이 들어 올려 운반이 가능했을까 아니면 고대문명은 과학기술 중에서 잃어버린 테크노로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로버트 바우발(Rovert Bauval/1948. 3. 5- <이집트 코드(The Egypt Code)> 저자) 은 말하기를

“기자에는 피라미드만이 아니라 피라미드를 잇는 강가의 신전도 있다. 피라미드가 2~3톤의 돌로 만들어진 한편 강가의 신전은 피라미드에 비하여 규모는 작지만 그 돌은 100톤이나 그 중에는 200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

100톤의 돌은 100대의 자가용차를 부수어 뭉친 한 덩이의 크기이다. 어떻게 해서 움직였는지는 물론 어째서 100톤짜리 돌을 쓰려고 생각한 것일까. 전혀 알 수가 없는 수수께끼이다.”

고대 우주비행사설 지지자는 외계인이 그 멋진 건조물을 만든 것이 아니고, 우리의 선조에게 어떤 기술적 지식이나 도구를 준 것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던(Christpher Dunn/1946년생/<잃어버린 고대 이집트의 기술(Lost Technologies of Ancient Egypt)>저자)은 고대 이집트인이 건설에 쓴 도구를 수10년 연구하고 있다.

던은 실제로 이집트의 유적에 가서 조사를 행하였다.

발견한 것은 혁신적이어서 논의를 일으킬 것이었다.

기자의 수 Km북쪽에 있는 아부로아슈(Aburoashu)를 조사하고 있을 때 던은 깊은 홈이 생긴 화강암을 찾아서 단서를 잡았다.

고대 이집트인이 거대한 톱을 사용하였다고 하는 던의 주장은 많은 고고학자의 대반발을 샀다. 그러나 던은 확신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던((Christpher Dunn)은

“나는 원래 기계공이었으므로 어딜 가도 공구의 흔적을 찾는다. 기계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룩소르박물관(Luxor Museum) 아문(Amun) 신전의 끝과 벤치가 접촉하는 부분의 옆, 잘라낸 부분에 도구가 미끄러졌던 자취가 있다. 매우 능률적인 도구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던(Dunn)은 또 기자의 지하에 있는 수많은 골은 고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박을 넣어두는 골이 아니다. 10m의 톱을 보관하는 장소였다고 생각한다. 골에 넣어졌던 톱은 대 피라미드에 쌓을 석재를 절단한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해서 거대한 돌을 들어 올려서 정확한 위치에 놓을 수 있었는가.?

 

레바논 바르베크에 있는 주피터신전에서 세계 최대의 인공석 3개가 발견되었다. 각각의 돌의 중량은 1000톤이라고 추정되었다. 가까운 채석장에는 남방의 돌이라고 해서 알려진 거석이 있다. 그 중량은 1200톤이다.페터 팔루티코프(Peter Palutikof=건축가)는

“움직이기 위해서는(1,200톤의 돌을) 대형 크레인차 21기분의 힘이 소요된다.”고 했다.

로저 홉킨스(Roger Hopkins=돌 조각가)는 “그곳에는 최대급의 굴삭기가 사용되어 트럭에 싣는 것도 큰 수고였다. 돌의 중량은 5톤이 넘는다.

상이집트에서는 도르래를 써서 올리는 직업을 했다. 여러 가지 단계에서 몇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붙어서 수 100톤 정도의 매우 깨지기 쉬운 돌을 움직였다. 확실히 로프는 사용되었지만 기계의 힘도 쓰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고 한다.

 

 

바르베크 신전의 돌 기둥과 버려진 돌

 

그런데 고대문명이 근대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면 어떻게 해서 메가톤급의 돌을 운반할 수 있었을까?

지구 밖의 생명체에게서 기술적인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조르지오 소우칼로스(Giorgio A. Tsoukalos/1978. 3. 14생-TV 뉴스케스터)는

“어떤 방법을 매우 간단하게 나타낸 자료가 존재한다. 그렇게 하여 거대한 돌을 채석장에서 건설현장까지 운반했는지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장의 소장은 돌에 걸기 위한 희고 종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돌에 걸어서 무엇인가를 적으면 단 한 번 누르기만 하면 마치 마법처럼 2m정도 가까이 움직일 수가 있다고 한다. 과연 마법으로 움직인 것일까. 아니 어떤 기술이 사용된 것이다.”고 했다.

고대인이 어떻게 해서 거대한 돌을 운반했는지는 하나의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고 그 돌을 가공하는 기술도 수수께끼이다.

 

어떻게 해서 강한 화강암에 복잡한 디자인 문양을 새긴 것일까?

 

캘리포니아주 팜 스프링(Palm Springs)의 숙련석공이고 조각가인 홉킨스(Hopkins)는 강한 돌의 절단, 정형에 여러 가지의 최신식 공구를 사용한다. 다이아몬드와이어나 연마기를 비롯하여 전동공구로 채석장에서 절단해낸 거대한 화강암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런 하이테크공구를 사용해도 홉킨스는 수 천 년 전 고대문명이 만든 것을 재현하지는 못한다.

조르지오 소우칼로스(Giorgio A. Tsoukalos)는

“고대유적의 돌 절단기술을 보면 지구외의 기술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증거로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가 돌 가공기술로 만든 것들 중에 현대의 기술로는 재현하지 못하는 것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고 한다.

푸마펀쿠(Puma Punku)는 볼리비아 고원지대에 있는 대규모의 신전유적이다.

고고학자의 다수는 기원전 200년경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문자나 수레를 가지지 않았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계유수의 복잡한 건조물을 만들었다.고대우주비행선설 논자는 지구외의 영향을 확실히 나타내고 있는 장소라고 보고 있다.

 

                                                                                      푸마펀크의 돌문 조각

 

크리스토퍼 코펜스(Christopher Coppens=1969년생 의상디자이너)는

“푸마펀쿠의 돌에는 볼만한 디자인이 나타나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수학의 개념을 초월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든 것 같은 디자인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던 것일까?”하고 말한다.로저 홉킨스(Roger Hopkins=돌 조각가)는

“그들의 돌 절단 기술은 매우 뛰어나다. 절단면이 정확하게 잘리었다. 여기에 있는 것 같은 내측의 절단은 매우 어렵다. 돌 가공기술도 놀랍다. 만일 현재 이와 같은 것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컴퓨터 제어의 CNC머신(Computer(ized) Numerical(ly) Control(led)=기계공작에서 공구의 이동량이나 이동속도 등을 컴퓨터에 의하여 수치로 제어하는 장치)을 사용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 CNC머신은 다이아몬드칩이 붙어있어서 디자인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머신이다. 그래도 이렇게 완벽하게 완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고 한다.조르지오 소우칼로스(Giorgio A Tsoukalos)는 “가에 손을 대보면 조금 힘을 더하는 것만으로 손가락이 잘린다. 모서리가 매우 날카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고대인은 이런 기술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우주인이 공법이나 공구를 주었다는 이야기 등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일까?미카엘 던(Michael Dunn=채광 기술자)은 “그 블록을 보았을 때 절단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처음 생각한 것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 의 테키스타일블록공법(construction textile block) 닮았다는 것. 1920년대 초에 세워진 캘리포니아의 주택에서 사용된 공법이다. 그는 콩크리트를 틀에 부어서 블록을 만들었다.”고 한다.조르지오 소우칼로스(Tsoukalos)는

“고대 잉카제국 사람들은 돌을 부드럽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쿠사이와만(Saksaq Waman) 유적에는 거대한 석벽이 있다. 그것은 마치 녹여서 필요한 장소에 흘려 넣어서 다시 굳힌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사쿠사이와만의 석벽과 마추핀추의 석벽

 

푸마펀쿠(Puma Punku)에서 수 백 킬로 북쪽 페루의 안데스산맥 위에 마추픽추가 있다. 잉카 사람에 의하여 15세기에 구축된 돌 요새인데 그 약 100년 후에 돌연 버려졌다.

푸마펀쿠처럼 마추픽추에도 첨단기술의 증거가 있는 것일까?

형틀로 만들어진 돌도 있는 것일까?던(Dunn)은 “이 유적을 만든 사람들은 공정계획을 세웠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돌을 절단하기 전에 운반방법을 정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기법이나 기술을 써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현대의 이 업계에도 가능한 대로 간단하게 하자는 격언이 있다.”고 말한다.

던(Dunn)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마추픽추의 거대한 모양은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작은 돌들을 현장에 운반하여 녹여서 형틀에 부어서 필요한 크기와 모양을 정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홉킨스(Hopkins)는 “바위를 녹여서 소정의 장소에 쏟아 붓는다고 생각하면 꽤나 높은 열이 필요할 것이다. 돌을 잘게 부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나는 석재가공용 버너를 가지고 있어서 이따금 화강암을 성형하는 데에 사용하는데 그 버너는 1600도가 넘는 열을 낸다.”고 한다.

 

신의 기술인지, 다른 혹성에서 고도의 기술을 가진 문명인이 와서 그들에게 하는 방법을 가르친 후 재료나 도구를 가지고 가버렸는가? 혹시 참으로 우주인이 지구에 첨단기술을 가져온 것이라면 그 도구를 남겨두고 갈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홉킨스(Hopkins)는 “고대에 행해진 수수께끼의 사업 대다수는 철이 없는 시대에 행해져서 동(銅)은 있었으므로 상온의 동을 망치로 두들겨 강하게 할 수가 있었을까?그러나 그것으로는 현무암이나 화강암 같은 돌은 요철(凹凸)을 낼 수가 없다.

그들은 더 어려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슨 첨단기술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 업계에 40년이나 있지만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크리스토퍼 던(Chrisopher Dunn)는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하여 그에 상응하는 도구나 기계가 쓰였을 것이다. 저토록 제도가 높은 조상(彫像)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그 도구는 어디 있는 것일까?” 하고 말한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고고학자 프린다스 페트리((Sir William Matthew Flinders Petrie、1853년 6월 3일~1942년 7월 28일=영국 이집트학자 고고학의 체계적 수법 확립한 사람)는 가장 큰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것을 구하기 위하여 이집트를 찾아 돌아다녔다.

데비 찰리스(Debbie Challis,ph.D.=런던 고고학박물관 역사가)는 “이것은 드릴 구멍, 위의 가는 선이 들어있고, 구멍은 거의 완벽하나 한편 끝이 가늘어졌다. 이것은 강한 돌 하나, 섬록암(閃綠岩) 그릇 조각, 선반이라는 공구의 자취가 있다.”고 한다.

 

페트리가 발굴한 도구 중에 한층 눈에 드는 것이 있었다.대 피라미드 안에서 작업을 할 때 화강암으로 된 드릴코아(drillcore=구멍을 뚫고 나온 덩어리)를 발견하였다.

데비 찰리스(Challis)는 “강한 돌이 신중하게 파내지고 정교한 홈이 새겨졌다. 각각의 선의 간격은 2밀리 정도이다. 정확한 직선이 일주하고 있다.

페트리는 이집트인이 이것을 만들기 위하여 다이아몬드 등 무슨 보석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고대 이집트에 다이아몬드가 있었던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한다.고대 이집트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서 화강암 드릴코아에 정확한 홈을 팔 수 있었던 것일까?기계 전문가 크리스토퍼 던(Christpher Dunn)은 고대 이집트인의 도구와 기법에 관한 지식을 구사하여 자기 스스로 화감암의 드릴코아(drillcore=구멍을 뚫고 나온 덩어리)를 만들어 이 물음에 도전하고 있다.던(Dunn)은 ”도관에 크랭크를 달고 연마재에는 모래와 탄화규소를 사용하였다. 몇 시간에 걸쳐 회전시키면서 화강암에 구멍을 뚫어서 충분한 깊이에 달해서 겨우 견본 코아를 꺼내었다. 다음에 우리들이 도관과 구멍 뚜껑을 연 코아를 현미경으로 보니 코아의 표면에 새겨진 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페트리 박물관의 코아에서 취한 코피의 선은 매우 확실하고 깊다.

이 정교한 출토품의 세부가 확실한 증거이다.

고대 이집트인의 기술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단서이다.

수평인지 아닌지를 검사하기 위한 정반(定盤)이라는 대(臺) 평면도(平面度)는 아마도 5.08미크론 이내로 인간의 모발의 10분의 1이라는 적은 오차밖에 없다.

수라피움(Surapiumu) 에 들어가서 그 벽에 측정기를 대어보니 그 평면도는 허용범위 내였다. 정밀한 측정기의 오차범위 내였던 것이다.

허용치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측정기의 한편 끝 밑에 종이를 한 장 놓아보면 알 수 있다. 작은 틈으로 빛이 샌다. 수라피움(Surapiumu)에 맞는 화강암 상자의 내측 제도는 5.08미크론 이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홉킨스(Hopkins)는 ”이집트에서 화강암에 새겨진 조각을 본 일이 있다. 그들은 석영(石英)의 작은 파편을 썼던 것 같은데 그것은 가능한 한 가지이다. 그런 방법이라면 엄청난 일손과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고대의우주인에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