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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7. 앙투안 드 라브아지에 이야기 (2-2/5)

간천(澗泉) naganchun 2024. 7. 5. 03:43

7. 앙투안 드 라브아지에 이야기 (2-2/5)

 

 

2)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입회에서 결혼하기까지

 

1766년에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도시의 가로에 최량의 야간 조명법이라는 테마로 논문을 현상 모집하고 있었다.

라브아지에는 이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먼저 논문을 써서 176649일에는 이 논문은 1등상을 받았다.

재빨리 이 논문을 쓴 이 성과에 대하여 당시 프랑스국왕인 루이 15세로부터 금메달이 수여되었다.

 

그 후 게타르와 함께 지질도 작성 여행에서 모은 음료수의 분석 결과를 발표하여 그 성과가 인정되어 1768518일에는 프랑스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당시 영국의 화학자. 물리학자인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1731-1810, 영국의 자연철학자, 화학자, 물리학자)는 금속과 산에서 수소가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에 대하여 말한 라브아지에는 물이나 연소 현상에 흥미를 나타내었다.

 

당시에는 고대로부터 4대 원소설이 유력하고 그중에서 <물은 흙으로 변하기도 한다,>라는 설이 있었다. 이에 의문을 품은 라브아지에는 1768년의 연말부터 이듬해 1769년에 걸쳐서 101일의 기간을 걸고 실험하였다. 이것은 물을 유리용기에 넣어서 밀폐 상태로 비등시킨 후에 정확히 중량을 측정하는 실험이었다.(페리간의 실험). 그 결과 흙의 발생은 관측되지 않고 <물은 흙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하는 설의 반증을 나타냈다.]

 

1768년에는 프랑스과학아카데미에서 하늘에서 거대한 돌이 낙하하여 일하던 농부의 가까운 지면에 꽂혔다.고 하는 보고서의 검토를 의뢰 받았다. 이에 대하여 라브아지에는 하늘에서 거대한 돌이 낙하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판단하여 목격자의 착각이거나 거짓일 것이라고 답을 보냈다.

 

앞에 말한 바와 같이 라브아지에는 유복하여 자산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실험기구를 구입할 자금은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실험기구의 구입 비용은 자산에서 내지 않고 1768년 무렵부터 징세청부인의 직에 근무했다고 한다.

라브아지에로서 실험은 <도락>이었다고 한다. 주에 1일은 실험에 빠지고 라브아지에는 그 1일을 <행복의 1>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1771126일에는 징세청부인장관인 자크 파울즈Marie-Anne Pierrette Paulze1758-1836, 프랑스의 화학자. 귀족)의 딸 마리안느 비에레트 포르즈와 결혼하였다. 식은 파리에 있는 산로크교회에서 집행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은 없었지만 마리 안느는 라브아제에의 도움이 되려고 영어나 라틴어,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화학이나 회화의 그리는 법 등을 습득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일랜드의 과학자인 라차드 커원(Richard Kirwan1733-1812, 아일랜드의 과학자 화학, 광물학, 지질학, 기상학 분야 연구)이나 조셉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 18세기 영국의 자연철학자, 교육자, 신학자, 정치철학자)의 논문이나 편지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거나 실험에 당해서는 매우 세세한 점까지 스케치. 기록으로서 남기거나 했다.

*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년 8월 30일 ~ 1825년 12월 29일)는 

신고전주의 양식에 속하는 유력한 프랑스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