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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중국 한시

大風歌(대풍가)

간천(澗泉) naganchun 2013. 2. 25. 04:48

 

大風歌(대풍가)

 

 

한/漢 유방/劉邦

 

大風起兮雲飛揚(대풍기혜운비양)

威加海內兮歸故鄕(위가해내혜귀고향)

安得猛士兮守四方(안득맹사혜수사방)

 

--대풍가--

대풍이 일고 구름이 날아오른다.

위엄이 천하에 미쳐 고향에 돌아왔노라.

용맹한 병사를 얻어 천하를 지키리라.

 

*풍(風)-바람. *기(起)-일다. *비(飛)-날다. *양(揚)-떨치다. *위(威)-위엄. *가(加)-미치다. *해내(海內)-천하. *귀(歸)-돌아오다. *고(故)-오래다. *향(鄕)-고을. *안(安)-어떻게 해서. *맹(猛)-사납다. *사(士)-선비. *맹사(猛士)-용맹한 병사. *사방(四方)-천하. *수(守)-지키다.

 

감상

진시황이 죽고 진나라가 종말에 이른 때에 항우(項羽)와 유방(劉邦) 등 군웅이 할거하였음을 읊어 대풍이 일고 암운이 날아 떨쳐서 각지에서 진나라에 대한 반란군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싸움에서 전공을 세워 위엄을 천하에 떨치고 개선하여 이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제 어떻게 해서라도 용맹한 병사를 모아 천하를 지키고 싶다 하고 기개를 보이고 있다.

이 시는 BC195년 유방이 회남왕(淮南王) 경포(黥布)의 반란을 평정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연회를 베풀고 부른 노래라 한다.

 

작자

유방(劉邦)(BC247-BC195)

전한의 황제, 자는 계(季), 이름은 방(邦). 묘호(廟號) 고조(高祖). 패(沛)(강소성풍현/江蘇省豊縣) 사람이다.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가업을 돌보지 않고 유협(遊俠)의 무리와 교유하였다. 장년에 이르러 사수정장(泗水亭長)이 되었으며, 당시 여산(驪山)의 황제릉(皇帝陵) 조영 공사에 부역하는 인부의 호송책임을 맡았다. 호송 도중에 도망자가 속출하여 임무수행이 어려워지자, 나머지 인부를 해산시키고 자신도 도망하여 산중에 은거하였다.

진(秦)나라 말기에 이르러 진승(陳勝), 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군웅이 봉기하였으며, 유방도 향리의 지도자와 청소년층의 추대를 받아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사를 일으켜 패공(沛公)이라 칭하였다(BC 209). 다음해 북상하여 항양(項梁), 항우(項羽)의 군과 만나 연합세력을 구축하였다. 그 뒤 항우의 군대가 동쪽에서 진군(秦軍)의 주력부대와 결전을 벌이는 사이, 그는 남쪽으로 관중(關中)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여 항우보다 앞서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시키고, 진왕(秦王) 자영(子拏)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또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을 폐지하고 법삼장(法三章)을 약속하여 인심을 수습하였다.

약 1개월 늦게 함양에 도착한 항우는 그를 살해할 목적으로 홍문(鴻門)에서 대연회를 베풀었으나(鴻門의 會), 장양(張良)과 번쾌(樊楯) 때문에 실패하였다. 진나라가 멸망하자 항우는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하고, BC 206년 유방은 항우로부터 한왕(漢王)에 봉해졌다. 그 뒤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소하(蕭何), 조참(曹參), 장양(張良), 한신(韓信) 등의 도움으로 해하(垓下)의 결전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실현시켰다. BC 202년 유방은 황제에 오르고 수도를 장안(長安)으로 정하였다.

한왕조 건설에 공이 큰 장수와 부하를 제후왕(諸侯王)과 열후(列侯)로 각지에 봉(封)하였으나, 얼마 뒤 이들이 모두 멸망하자 왕실일족(王室一族) 출신으로 대체되어, 제후왕은 한실일족(漢室一族) 출신자에 한정된다는 불문율이 성립하였다. 유방은 서민 출신이었으나 성격이 대담 치밀하고 포용력이 있어, 부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데 능숙하였으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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