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이야기(2/5)
--고교시절에 최소이승법을 발견한 근대수학의 시조--
2, 출생과 유년시절
가우스는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벽돌공장의 장인이었던 아버지와 검소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학문과는 전혀 무관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신동으로 알려졌으며, 아래와 같은 초등학교 시절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수학 교사는 그의 재능을 볼 때마다 이와 같은 천재에게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교사는 가우스의 아버지를 여러 번 설득하여 가우스가 수학을 공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한 가우스는 다재다능했기 때문에 음악과 언어학에도 관심을 가지며, 장래에 무엇이 될지 고민했다고 한다. 1792년경, 15세였던 그는 매일 15분씩 여유 시간을 할애하여 1,000개의 자연수 각각에 얼마나 많은 소수가 존재하는지를 조사했고, 그 수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관찰하면서 약 100년 후에 증명되는 소수 정리를 예측했다고 한다.
가우스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기 전부터,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이 계산을 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세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그의 아버지가 장인들에게 지급할 급여를 계산하고 있었는데, 가우스는 아버지의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옆에서 지적했다.
아버지가 놀라서 다시 계산해 본 결과, 아들이 지적한 대로 계산이 틀렸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가우스는 술통의 부피를 구하기 위해 그것을 얇게 자른 면의 면적을 조사하여 쌓으면 된다는 적분의 개념에 스스로 도달하기도 했다.
가우스는 7살에 지역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비윗너 교장으로부터 산수를 배웠지만, 가우스는 이미 이를 마스터한 상태였다. 이에 교장은 자신의 돈으로 더 고급스러운 산술 교과서를 함부르크에서 주문했지만, 가우스는 곧바로 그 교과서를 다 읽어버렸다. 교장은 <이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교장은 조수인 요한 바르텔스에게 가우스를 맡기기로 했다. 가우스와 바르텔스는 함께 학습하면서 교과서를 개량하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바르텔스는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페르디난트(Wilhelm Ferdinand von Braunschweig-Wolfenbüttel, 1735-1806)의 지인이었고, 1791년에 가우스는 그와 만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 경제적 지원으로 인해 가우스는 진학할 수 있었고, 1795년에 괴팅겐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 1798년에는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후령(Principality of Brunswick-Wolfenbüttel ) 에 위치한 헬름슈테트 대학교(Universität Helmstedt)로 옮겼고, 1807년에 다시 괴팅겐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