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하기 때문에 절멸한 셈이 아니다. <진화의 불가사의>
복수의 인류가 있던 시대
약 700만 년 전에 인류가 태어나서부터 이 지구상에는 몇 십종의 인류가 진화해왔다. 당연히 2종 이상의 인류가 공존하고 있던 시대도 있었다. 아니 당연히 그게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지구상에 있는 인류는 1종뿐이다. 곧 우리들 사람(학명, 호모사피엔스)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에 익숙해져있다. 그런 때문에 어쩌다가 우리들 이외의 인류가 지구에 있다면 하고 상상할 뿐으로 우리의 마음은 조금 흔들린다. 그래서 다른 인류를 지나치게 의식해버린다.
일찍이는 인류는 어느 시대에도 1종밖에 없었다고 하여 단일종설이 유력했다. 동시에 2종의 인류가 지구에 있었던 일은 없고 1종인 채로 진화하여 현재의 사람이 되었다는 설이다.
이 설을 반증한 것이 1968년에서 1975년에 걸쳐 케니아의 구비 호라에서 발견된 화석군이었다. 180-170만 년 전의 구비 호라에서는 오스트랄로피데쿠스 보이세이(Australopithecus boisei)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옛날의 지구에는 복수의 인류가 자주 동시에 살았던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 최초의 증거가 얻어진 것이 이 구비 호라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완장(阮丈)한 이빨을 가진 원인(猿人)이다. 그 거대한 어금니 때문에 호두 까는 인형이라 불리는 일도 있었다. 굳고 영양이 적은 사초(管) 등의 잎을 먹기 때문에 특수화한 이빨을 가지고 있던 인류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호모 에렉투스는 키가 크고 긴 거리를 달리기도 할 수 있는 인류이다. 석기를 쓰고 일상적으로 육식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와 호모 에렉투스가 다른 종이라는 것은 화석의 모양으로도 분명하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점점 개체수가 줄어서 늦어도 약 120만 년 전에는 절멸하고 말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가 빈번히 육식을 하고 있던 호모 에렉투스에 사냥 당했을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나타내는 증거는 없으므로 아마도 식물을 둘러싼 경쟁에 패했을 가능성 쪽이 높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가 절멸한 이유는 확실히는 모르지만 가능성은 몇 가지 생각된다.
어째서 완장형원인(頑丈型猿人)은 절멸했는가.
여기서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오스트랄로 보이세이가 살았던 환경에는 그들 이외에도 호모 에렉투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위에는 여러 가지 생물이 있어서 그들 생물과도 가지가지의 관계를 가지며 살아왔다.
예를 들면 영장류(원숭이나 유인원이나 사람의 사촌) 중에는 삼림이 아니고 열린 환경에서 살았던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개코원숭이 사촌이 있다.
개코원숭이는 잡식성으로 풀, 꽃, 종자, 뿌리, 과실 기타 곤충이나 소동물도 먹는다. 개코원숭이와 초기인류의 식물은 꽤 공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 사이에서 경쟁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높다.
개코원숭이는 영장류 중에서 가장 빨리 다릴 수가 있다. 호모 에렉투스마저도 개코원숭이에게는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민첩하게 움직이는 개코원숭이에게 몇 번이나 식물을 빼앗겼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개코원숭이에 대하여 어떻게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와 개코원숭이의 경쟁은 식물을 다투는 것만은 아니다. 포식자에게 쫓길 때에 어느 쪽이 많이 살아남았을 수가 있었을까 하는 것도 중요한 경쟁이다.
개코원숭이가 포식자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법은 4가지 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몸을 크게 하는 것이다. 몸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방어가 되기 때문이다.
개코원숭이는 영장류 중에서는 꽤 큰 편이다. 체중은 20Kg정도 있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의 체중은( 잘 모르지만 대개) 30Kg이상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몸의 크기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쪽이 개코원숭이보다 유리하다.
둘째는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이다. 포식자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방어는 이 달리기이다. 이에 대해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가 개코원숭이 하고는 승부가 되지 않음은 확실하다.
셋째는 큰 어금니이다. 표범은 개코원숭이를 잡아먹지만 대낮에는 개코원숭이를 습격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코원숭이에게 어금니로 반격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표범은 개코원숭이가 잠자는 밤에 습격한다. 이에 대해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보디 불리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의 어금니는 작아서 이빨로서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무리를 짓는 것이다. 집단이 커지면 포식자에게 들키기 쉽지만 자신이 잡힐 가능성은 낮아진다. 포식자는 한 번에 포힉물을 몇 마리나 먹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 마리로 약하지만 집단으로 대항한다면 육식 짐승을 쫒아낼 수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스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아마도 개코원숭이보다 유리하다. 개코원숭이보다 협력적인 사회관계를 만들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컷끼리 협력하여 큰 소리를 내거나 가지를 흔들거나 하여 포식자를 쫓았을는지 모른다.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식물을 빼앗기에 대해서도 포식자로부터 방어하는 데 대해서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개코원숭이보다 조금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단순화한다면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생물은 개코원숭이와 오스트라로피테쿠스 보이세이와 호모 에렉투스 뿐이었다고 하자.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쪽부터 순위를 정한다면 1번이 개코원숭이이고, 2번이 호모 에렉투수이고, 3번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로서는 개코원숭이는 호모 에렉투스 이상의 강적이었던 셈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의 절멸에는 호모 에렉투스보다도 개코원숭이 쪽이 관계하고 있었을는지 모른다.
사람이 자바원인(原人)을 절멸시킨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실제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가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대는 호모 에렉투스나 개코원숭이가 아니다. 다른 여러 가지 생물과도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셈이다.
다시 말하면 생물 이외의 환경조건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 어떤지 하는 큰 요인이 되었던 셈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가 절멸한 중요한 원인은 아마도 호모 에렉투스와의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조금은 관계가 있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참으로 약간의 원인의 일부였던 셈이다.
우리들은 곧잘 인류의 일로 머리가 꽉 차버린다. 다른 생물이나 환경 등 인류 이외의 많은 일들을 곧잘 잊어버린다. 그러나 인류보다 인류 이외의 요인 쪽이 많기 때문이다. 그쪽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자바 원인의 가장 새로운 화석 연대가 약 11만 년이라고 발표되었다. 일찍이는 자바원인은 수만 년 전까지 살아있었고, 자바원인의 절멸에는 우리들 호모 사피엔스가 자바섬에 도달한 것이 관여하고 있다고 그런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11만 년 전이라면 아직 호모 사피엔스는 자바섬에 도달하지 않았다.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바원인의 절멸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어원문-弱いから絶滅するわけではない「進化の不思議」
출처=https://gendai.ismedia.jp ›
필자=사라시나 이사오(更科 功)
1961년 도쿄생, 일본의 고생물학자. 1985년 도쿄대학교양학부기초과학과 졸업. 2000년 도쿄대학대학원이학계연구과박사과정 수료. 이학박사. 츠쿠바대학연구원. 2012년의 『화석의 분자생물학』으로 고단샤(講談社) 과학출판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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