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요임금은 요리사(내편 소요유)
어느 날 요임금은 은자인 허유(許由)를 찾아갔다. 그래서 말하기를 “지금까지 나는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당신이 나오시면 당신에게 왕위를 물려드리고자 합니다. 햇빛과 달빛 아래에서는 횃불 하나는 아무런 구실도 못합니다. 또 때맞추어 비가 내려 마른 들판을 적신 후에는 우물물을 길어다 관개를 꾀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이번만은 꼭 당신에게 왕위를 물려드리고자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지금까지 당신이 천하를 다스려서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있는데, 거기에 내가 가서 당신을 대신한다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요? 천자의 이름만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면 그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이름은 실질의 손님입니다. 곧 실질이 있어서야 이름이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나의 형편을 보고 안 됐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에게는 나 나름의 만족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굴뚝새는 깊은 숲속에 둥지를 틉니다. 아무리 큰 숲속이라 하더라도 그 작은 굴뚝새가 만드는 둥지란 것은 결국 하나의 작은 가지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또 두더지를 보십시오. 끝없이 넓은 황하의 흐름에 가서 물을 마십니다. 아무리 황하가 크다고 해도 그 두더지가 마시는 물은 기껏해야 작은 배를 채울 만큼의 몇 방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스스로 만족해합니다. 나에게는 나의 만족이 있습니다. 당신은 돌아가 주십시오. 천하를 물려준다든지 만다는 말은 그만 둡시다.” 이렇게 말하고 요임금의 청을 거절하였다.
인간이 욕심을 내지 않고 분수에 편안히 있고, 명을 따르는 것을 초료일지(鷦鷯一枝), 또는 언서만복(偃鼠滿腹)이라 한다. 이 말은 이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이 대목의 장자의 글 솜씨는 매우 빼어난 바가 있다.
그런데 허유는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겸손한 태도로 요임금의 청을 거절하고 있지만, 다음으로 가면 그 태도는 확 바뀐다. “요리사가 요리를 아니 한다 해도, 제관은 술항아리나 도마를 넘어가서 이를 대신하지는 아니합니다.”고 말한다. 곧 제사에 바칠 제수를 요리하는 요리사가 요리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제사를 지낼 때의 존귀한 제관은 도마를 건너 뛰어가서까지 그 요리사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는 허유는 귀한 지위인 제관이 되고, 요임금을 낮은 요리사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살아있는 신으로 우러러 모시는 요임금도 노장류의 허유가 본다면, 한 사람의 요리사 정도로 밖에 취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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