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24화. 상망(象罔)이 현주를 찾았다(외편 천지)

간천(澗泉) naganchun 2009. 8. 8. 18:43

 

제24화. 상망(象罔)이 현주를 찾았다(외편 천지)

 

“황제가 적수(赤水)의 북쪽을 여행하며 곤륜산에 올랐다가 남쪽을 바라보고 돌아오는 길에 현주(玄珠)를 잃어버렸다. 지(知)로 하여금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고, 이주(離朱)로 하여금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으며, 끽후(喫詬)로 하여금 찾게 하였어도 찾지 못하였다. 마침내 상망(象罔)을 시켰더니 찾아내었다. 황제가 말하였다. ‘이상하구나. 상망이 그것을 찾을 수 있었다니.” (외편 천지)

 

  황제가 적수(赤水)에서 노닌 이야기이다. 황제는 어느 날 적수의 북쪽을 여행하였다. 적수란 극남의 땅인 듯하다. 곤륜산(崑崙山)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았다. 인간이 학문을 하고, 식견을 넓히고 한다는 비유인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현주(玄珠)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곤륜산이라는 높은 곳에 올라서 견문도 넓히고 지식도 모았다. 그러나 최후에는 인간의 참 된 것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말이다. 요컨대 사람의 참, 인간의 성령(性靈)은 지식이나 견문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비유인 것 같다.

 

  현주를 잃은 황제는 첫째로 지(知)라는 것 곧 인간의 지식 또는 인간의 생각으로 현주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다음에 이주(離朱)를 시켜서 찾으려 했지만, 그것도 안 되었다. 그 다음에는 끽후(喫詬)라는 것을 시켜서 찾으려 하였지만 그것도 안 되었다는 것이다.

이주라는 것은 옛날 눈이 매우 밝은 사람을 말한다. 《맹자》에 나오는 이루(離婁)의 밝기라는 것이 이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견문을 비유한 것이다. 다음으로 끽후라는 것은 훤후(諼詬)와 통하는 말로 인간의 논의 곧 언변을 말한다. 그러니까 견문을 가지고 찾아도, 언어를 가지고 논의해보아도 그 현주는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끝으로는 무엇으로 찾았는가 하면, 상망(象罔)을 시켜서 찾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경 인간이라는 것은 인생 최후의 귀추를 생각할 때, 혹은 인성의 진리를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은 지식, 사고력을 써서 찾으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눈과 귀의 총명함에 의지하여 이것을 찾으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언어문장에 의하여 이것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들 어느 것을 가지고도 인간의 모습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라, 마음을 혼돈상태에 놓을 때에 비로소 사물의 참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비유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독서 학문 등으로는 이 점에서 말하면 끝의 끝인 행동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