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단상/월요단상

2011년 「중앙마라톤」을 완주하고서

간천(澗泉) naganchun 2011. 11. 7. 03:55

 

2011년 「중앙마라톤」을 완주하고서

-2011년 11월 6일 「중앙마라톤」에서

마라톤제한시간을 넘긴 어느 주자의 이야기-

 

 

 

(1) 만트라에 대하여

그것을 ‘만트라’라고 하는가 보다. 마라토너들이 장거리를 뛰는 동안 자신을 질타하고 격려하기 위해 쓰는 짧은 음절로 된 일종의 주문 말이다. 만트라(mantra). 나는 달리기를 시작한 뒤부터 아마도 이런 표현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라토너들 사이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읽었다.

 

마라톤은 나에게 명상이다. 기도다. 달리는 내내 나는 이 만트라라는 불교용어 같은 표현에 걸맞은 주문을 외우며 끓임 없이 발을 움직인다.

나의 만트라는 ‘감사합니다, 하나님.’이다.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할 대상이 많지만 가장 높은 분이시므로.

한 발자국 내딛으며 “감사” 다른 발 내디디며 “ 합니다”. 다시 이전의 발을 내디디며 “하나” 다른 발 내디디며 “님”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네박자다.

 

주문 한 번에 네 발자국이 소요된다. 소리 내서 하면 숨이 가쁘기 때문에 속으로 한다.

그러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집중이 된다. 그 사이 사이로 고통이 스며들어 꽉 채운다.

 

나는 1킬로미터를 약 7분에 뛴다. 10킬로미터면 약 70분이다.

마라톤 풀코스가 42.195킬로미터인데 5킬로미터마다 급수를 하고 스트레칭 하고 지치고 하다보면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최고 기록이 5시간 8분이다.

 

100미터 기준으로 할 때 100미터 당 108보를 내디딘다. 108 나누기 4를 하면 27.

100미터마다 27번 주문을 외우는 식이다. 10킬로미터면 27 곱하기 10은 270번. 270번 곱하기 4는 1,080번. 여기에 2킬로 195미터를 환산한 것을 더하면 567. 마라톤 풀코스 42.195킬로미터를 뛰는 동안 총 1,647회 주문을 외운다.

 

(2) 5시간을 넘기는 주자들의 이야기

마라톤은 어른들의 스포츠다, 메이저급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 아침이면 새벽부터 전철에는 스포츠복 차림에 작은 배낭을 하나씩 멘 달리미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기도 하고, 혼자서 명상을 하듯 오늘 달릴 코스를 상상해보는 듯하기도 하다.

모두의 행선지가 같다. 한 해의 봄 3월에는 동아일보에서 주최를 하는 서울국제마라톤이. 가을이 되면 서울에서 가장 큰 대회는 중앙마라톤이다.

오늘 그 중앙 마라톤을 뛰고 왔다. 비가 내리고 추적추적 달리는 내내 땀으로 젖어야 할 몸이 비로 달리는 내내 샤워를 했다.

 

나의 두 번째 마라톤 풀코스 기록은 5시간 19분이다. 봄에는 첫 풀코스 도전에 5시간 8분이었다. 더 늦은 기록이다. 그래도 좋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를 했기 때문이다.

 

5시간은 마라톤 제한 시간이다. 시민들의 도로를 고생하는 달리미들이 점령한다. 5시간대에 달리는 사람들을 가장 미워? 하는 사람들은 경찰관아저씨들일 것이다. 내 시계로는 3시간대이고 거리는 약 30킬로 지점부터 교통통제를 해제하려고 부산하다.

 

달리기를 위해 내어주던 도로를 반으로 줄이고 다시 한 차선으로 줄이고, 그리고는 이윽고

순찰차를 타고 뒤 따라오면서 메가폰으로 “그렇게 무리하게 걷지 마시고 후송차량에 탑승하고 편히 가십시오.” “이게 마지막 후송차량입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도로를 차단해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리고 있습니다.” “기왕 달리실 분들은 인도로 올라가서 달리시기 바랍니다.”

 

이건 아마도 고상하게 말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고생시키지 말고 시민들 눈치 보입니다. 당신들 좋아서 하는 일에 우리가 몇 시간째 고생입니다. 5시간 안에 못 달릴 거면 일찌감치 포기하시죠. 그렇게 어그적어그적 걷는 게 달리깁니까?’ 라고. 자꾸 이들이 마라톤 완주를 포기하라. 포기하라. 하는 듯하다.

 

5시간을 거뜬히 넘기고 오래 달리기에 능한 우리들은 동료의식이 생긴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기들이 소지하던 사탕이나 잼 같은 것을 건네면서 서로 응원을 해준다. 자꾸만 뒤쫓아 오면서 귀찮게 훼방을 놓으며 명상을 방해하는 경찰관들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완주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어느 동호회 소속이냐며 묻기도 하고 나처럼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와,,, 대단하다. 독립군이시군요. 의지가 대단 하십니다.”라고도 한다. “걸으면 안 된다. 조금씩이라도 뛰어야 한다.” “풀코스는 몇 번 뛰냐는 꼭 나오는 호구조사 같은 거다.”

 

달리기에 급급하지 않고 이런 따스한 정이 오가는 인도주행이다. 정말 눈치봐가며 뛴다. 소외된 주자들이다.

 

도착지점이 다가오면 이런 풍경도 있다. 이미 완주를 마치고 4시간, 3시간대에 들어와 옷도 다 갈아입고 먹을 것도 먹고 여유를 되찾은 사람들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시간을 넘겼는데도 발을 질질 끌며 죽을 똥 살 똥 달리는 사람들에게 “다 왔어요, 힘내세요!”라고 한다.

 

재미있다. 주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전, 이미 들어와서 나를 기다리던 남편이 사진을 찍어준다. 항상 내가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주던 그 자리에서 ..나는 너무 늦게 들어와서 미안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춥지 않았냐고 한다. 완주해서 대단하다, 정말 장하다고 격려해준다. 그는 나의 마라톤 스승이다.

 

운동장을 거의 한 바퀴 돌고 골인 지점에서 시간을 찍으니 5시간 19분. 눈물이 난다.

온 몸이 아프고 엉덩이 골반서부터 허벅지까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완주해서 너무 좋다. 올 해 목표로 했던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를 해냈다. 앞으로도 해 낼 것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의 풍경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 만트라를 줄기차게 욀 것이다. <e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