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테스와 멕시코의 말린체
현재 멕시코는 중앙아메리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면적은 1,964,3715 평방킬로미터로 세계 15위이고, 인구는 111,211,789명으로 세계 11위이며 인구 구조는 메스티소(원주민과 스페인계 백인과의 혼혈)60%, 아메리카원주민 25%. 백인 15%로 구성된 나라이다.
16세기 초 멕시코에서 가장 번성했던 아즈데카(Azteca=1428년경부터 1521년까지 멕시코 중앙부에 번영한 메조아메리카문명의 왕국/언어는 나와르도어)제국은 코르테스(Hernán Cortés, 1485년-1547년)가 이끄는 적은 수의 스페인인에게 멸망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의 여성의 존재가 없었다면 강대한 아즈데카제국은 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말린체의 운명
말린체란 아즈데카문명의 멸망을 가져오게 한 여성의 이름이다.
오늘 날 그녀의 이름은 조국 멕시코에서는 배신자라고 알려져 있다. 도대체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여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인지 역사의 이면을 보기로 한다.
말린체((La Malinche、1496년/1505년경-1529년경/1550년)는 1502년 무렵 멕시코만의 남해안에 있는 바이나라라는 마을의 촌장의 외동딸이었다. 이 지방은 원래 토지가 비옥하고 우량도 많아서 옥수수가 잘 되어서 살기가 좋았다. 어릴 때 말린체는 유복한 명문가 자녀로서 교육을 받기 위하여 테노츠티트란(Tenochtitlan)에 유학하여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당시 테노츠티트란(Tenochtitlan)은 최성기 인구 30만이나 되는 세계 일급의 거대도시로서 아즈데카의 수도였다.
그런데 마을 수장인 아버지가 갑자기 죽어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 후 그녀의 어머니는 다른 마을 수장에게 개가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 일은 그녀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대사건으로 발전하였다. 의부와 개가한 어머니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서 수장의 집안을 계승하는 데에 말린체가 걸림돌이 되었다.
그날 밤 말린체는 의부와 어머니가 침실에서 자기가 수장의 대를 계승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들로서는 자기가 장래에 걱정거리의 씨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 이외로 그녀의 탄생 달에도 원인이 있다. 말린체의 원래의 이름은 마리나리라 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아즈데카의 특이한 달력에 의하면 말린체가 태어난 달은 운명적으로 속죄를 의미하는 달이기도 하였다.
속죄란 어떤 죄를 범하여 그 죄를 씻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일을 격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즈데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달의 성격에 영향을 받아 태어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 부모는 금후 영리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딸이 어떤 엄청난 죄를 범하여 그 재액이 자신들에게도 걸릴는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때 자기가 그 부모에게 걸림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 보면 그 예언은 맞은 것인지 모른다. 말린체는 이윽고 아즈데카제국을 멸망시키는 운명의 딸이 된 것이다.
이 무렵 가까운 노예의 집에서는 같은 또래의 소녀가 죽는 일이 생겼다. 그 부모는 노예의 집에서 죽은 소녀의 시체를 받아 말린체가 죽은 것으로 가장하여 정중히 장례를 지냈다. 죽은 사람이 된 그 말린체는 노예의 딸로서 타바스코(Tabasco)지방의 수장에게 팔리게 되었다. 현대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가혹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가문이나 국가의 일이 최우선으로 존속 번영을 위해서는 개인은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것이 극히 보통의 가치관이었다.
그런 이유로 말린체는 노예의 딸로서 타바스코(Tabasco)의 어느 수장에게 팔려간 것이다. 이 지방의 말은 마야(Maya)어이다. 총명한 그녀는 얼마 동안에 마야의 말을 익혔다. 이리하여 모어였던 아즈데카어에 더해서 마야어도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이후 그녀의 운명에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말린체와 코르테스의 만남
코르테스는 1504년에 이스파뇰라섬으로 도항하여 정착하였다. 1511년에 콜럼부스의 일단이었던 벨라스게스(Diego Velazquev De Cuellar 1465~1524) 의 쿠바 원정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고 벨라스게스가 쿠바 총독이 되자 그 비서관으로서 세력을 확장했다.
코르테스
마침내 그는 멕시코 정복의 욕심을 내고 1519년에 벨라스게스 총독이 말림에도 불구하고 명을 배반하여 병사 500명, 말 16두, 범선 11척으로 멕시코 해안 베라쿠루스(Veracrus)에 상륙하여 아즈데카의 숙적이었던 틀락스칼라(Tlaxcala) 부족과 전투하여 그들을 정복하고 동맹을 맺었다.
1519년 3월의 어느 날 헤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11척의 함대가 말린체가 있는 마야의 서쪽 변경지인 타바스코(Tabasco) 해안에 나타났다.
그때 말린체는 17세로 타바스코의 수장은 그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하여 황금이나 보석과 많은 공물과 함께 20명의 미녀 노예를 바쳤는데 그 중에 말린체도 들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말린체의 아름다운 미모는 남자들의 눈을 끌었다. 장신에다가 균형 잡힌 지체, 밤색의 빛나는 피부, 길게 늘어뜨린 검은머리였다. 누구나 유가 없는 미녀라고 보았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해도 그녀의 정렬적인 빛을 띤 지적 호기심에 찬 눈빛은 천 마디의 말보다도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34세의 코르테스의 눈에 들었다. 한편 말린체도 코르테스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는 순간 편안함을 느꼈다. 이 분이야말로 케츠알고아트르(Quetzalcóatl=아즈데카 신화의 문화신, 농경신)에 틀림이 없다. 만일 이분 하고 하룻밤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나는 신의 아기를 배게 될는지도 모른다. 내가 케츠알고아트르의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자 전신의 피가 용솟음치는 것 같은 흥분을 느꼈다.
그때 그녀도 망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기 시작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출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말린체의 이 직감은 곧 현실로 나타날 것이니까. 이리하여 숙명을 띤 이 둘의 선은 교차하게 되었다.
그 후 20명의 노예 여자들은 가톨릭의 세례를 받았다. 이 때 말린체는 자기 본래의 이름 마리나리의 발음과 흡사한 마리나라는 스페인풍의 이름을 받았다. 그녀는 스페인 사람으로부터는 도니야 마리나 라고 부르게 되었다. 도니야란 고귀한 여성을 부르는 존칭인데 스페인 사람들이 얼마나 그녀들을 후히 대하고 한 사람의 떳떳한 인간으로 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도니야 마리나가 아즈데카 풍으로 된 이름이 말린체로 아즈데카 사람은 그녀를 부를 때에 이 이름으로 불렀다. 이것이 말린체의 유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즈데카 풍의 이 이름 말린체에는 배신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린체의 코르테스에 대한 기여
얼마 하지 않아서 말린체는 스페인어를 쉽게 익혔다. 그리하여 아즈데카어를 비롯하여 마야어, 스페인어 등을 익힌 말린체는 그 후로 코르테스의 통역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대활약을 하였다. 그녀를 통하여 얻은 정보는 어떤 것이나 천금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부족이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다시 반란을 계획하고 있는 지하는 아즈데카의 모순이나 약점 곧 기밀정보가 귀에 잡히는 대로 알 수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코르테스가 그녀한테서 어드바이스를 받은 것으로는 케츠알고아트르의 전설이 있다.
원래 아즈데카에는 케츠알고아트르의 전설이 있었다. 케츠알고아트르는 원래 국왕으로 신관이었는데 아즈데카 고래의 인신희생 풍습에 반하여 추방된 신이었다. 케츠알고아트르를 추방한 후에 아즈데카제국을 통치하게 된 것은 휘칠로포츠트리(Huitzilopochtli=아즈데카 신화의 태양신, 군신, 수렵신)라는 전쟁의 신이었다.
추방당한 케츠알고아트르는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동쪽 바다로 모습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 예고한 해에 우연히 동쪽에서 코르테스가 왔으니까 타바스코의 수장도 꼭 케츠알고아트르가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둘렀던 셈이다.
어떻든 피부가 희고 머리는 곱슬머리라는 특징도 꼭 닮았던 것이다. 그래서 말린체마저도 처음에는 코르테스를 케츠알고아트르라고 생각했다.
코르테스의 주도함
코르테스 자신도 말린체로부터 일찍이 추방당한 아즈데카의 신으로 잘못 알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매우 놀랐다. 코르테스는 그러면 자신이 스스로 케츠알고아트르라고 칭하는 것이 형편이 좋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그 전설에 편승하게 된다. 이것도 코르테스의 주도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코르테스는 황금에 눈이 어두워진 욕심 많은 정복자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유머가 있고 대단히 여자를 좋아하고 게다가 머리가 잘 돌아가서 상대의 심리를 잘 알아서 조직의 통솔력은 매우 유능했다.
예를 들면 부하들이 이 이상 진군하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눈치 채면 배와 식료를 준비할 터이니 퇴각하고 싶은 자는 이제 쿠바까지 퇴각하여도 좋다고 말한 일이 있다. 이상하게도 인간이란 도망칠 길이 확보되면 갑자기 용기가 나는 것으로 그 사이에 다른 약한 마음을 가진 자는 아마도 군법화의에 넘겨질 것이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결국 코르테스는 형편을 보아서 조금 군법회의는 지나치다고 말하면서 그러면 진군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고는 철군 허가를 취소하는데 그것은 하나의 술수였다. 결과적으로 그로서는 부하들 스스로 진군을 결정하게 되어 전군의 사기가 높아진 것이라고 혼자 웃곤 하였다.
또 민가에서 수 마리의 닭을 훔친 병사가 있었는데 그는 <약탈하는 것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자랑스러운 스페인 병사가 아니다. 즉각 처형한다.> 하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교수형에 처하려 하였다.
많은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집행하려는 직전에 코르테스의 막료 중 한 병사가 구명을 청하여 달려왔다. 코르테스는 머리를 잡고 잠시 생각한 후에 혀를 차면서 이를 승인하고 병사의 목에 걸린 로프를 풀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있던 병사들은 코르테스의 관대함에 감사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막료들 하고 협의를 했다. 이런 멋진 연출로 귀중한 병사의 목숨을 헛되이 하지 않고 전군의 규율을 끌어 잡을 수가 있었다.
코르테스가 하는 방법은 이런 식으로 상대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서 하는 교묘한 수단이었다. 곧 간접적으로 누구를 끼어 넣음으로써 자신이 중대한 결정을 한 것처럼 자각시켜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이끌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에게 심리를 꿰뚫어보게 하여 그가 생각하는 대로의 방향으로 이끈 것이다.
코르테스에 대한 원주민의 반응
스페인인이 해안부에 도착한 것을 안 아즈데카제국 황제 모크테즈마(Moctezuma II, 1466년~1520년)는 즉시 사자를 보내었다.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고 싶은 것이었다. 선물로 황금 장식품을 가지고 간 사자는 코르테스에게로 갔다. 사자는 돌아오자 보고 들은 사실을 모크테즈마에게 보고했다. 그 내용은 큰 굉음을 내는 대포 이야기라든지 처음으로 본 말 이야기라든지 그리고 하얀 피부에 수염이 난 스페인인의 풍모 등을 시종 보고하였다.
이 보고를 들은 모크테즈마는 공포에 떨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전설과 같다고 느낀 것이다. 최후에는 절망한 나머지 졸도할 지경에 이르렀다. 모크테즈마가 이런 정도로 믿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수년 전 테노츠티트란에는 불길한 전조라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기묘한 빛이 하늘에 빛난다든지, 신전 여기저기에 이상한 불이 나타났다든지, 밤이 되면 어디서인지도 모르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호수에서 기묘한 새가 잡히기도 하였다. 그 새의 머리에는 반투명의 구슬이 타고 있었다. 모크테즈마가 그 구슬을 보니 사슴과 같은 괴물과 이상한 모양의 전사의 무리가 비쳤다고 한다. 또 머리가 둘이 있는 기괴한 인간이 시중에서 목격된 일도 있었다.
이런 전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는가. 케츠알고아트르가 찾아와서 아즈데카제국을 멸망시키려는 전조인가? 모크테즈마와 신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 그들을 막지는 못할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결과로 얻은 결론은 공물을 가지고 사자를 보내어 그들의 환심을 사고 테노츠티트란으로는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한편 코르테스는 사자가 가지고 온 훌륭한 공물에 눈이 어두웠다. 사자가 공물을 가지고 정중히 멕시코에서 물러나 주기를 바라면 바랄수록 이에 반비례하듯이 그들 스페인인들은 점점 흥미를 가지고 나오게 되었다.
코르테스의 수도를 향한 행군
이리하여 테노츠티트란으로의 행군이 개시되었다. 겉으로는 우호를 위하여 황제에게 알현한다고 했지만 그 실체는 침략하여 금은재보를 약탈할 것이 목적이었다. 진격에 앞서서 코르테스는 해안에 정박하고 있는 선박을 한 척만 남겨두고 모두를 태워버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병사들에게 보여주어 승리의 각오를 불태우게 한 것이었다.
남겨 둔 한 척의 배는 스페인 본국으로 출발하였다. 그 목적은 쿠바 총독의 허가 없이 멕시코 정복에 나선 것을 직접 국왕에게서 승낙을 얻기 위해서였다. 당시 아즈데카제국은 소위 연방제로서 여러 개의 나라로 구성된 연방제 나라였다. 연방제라고는 하지만 실은 아즈데카족이 중심이 된 전제지배였다. 그런 때문에 각 부족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들의 전쟁은 그 목적이 의식에 헌납할 희생물을 얻기 위한 것이 주였고 어디까지나 상대국을 치고 멸망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곧 전쟁은 죽이는 것이 주가 아니고 포로를 산 채로 잡는 것이 주안이었던 것이다. 비록 전쟁을 하더라도 정해진 바가 있어서 곧 싸울 때는 잠자는 자를 공격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낮에 행해야 하며 휴일에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마치 스포츠를 즐기는 듯이 했다. 아즈데카인은 이것을 꽃의 전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떻든 코르테스의 군대는 때로는 위협하고 때로는 대화라는 회유책을 교체해 가면서 부족들과 친해지면서 깊숙한 곳을 노렸다. 말린체는 통역뿐 아니라 때로는 아즈데카의 여자로서 상대 진영에 들어가서 내막을 탐색하곤 하여 대활약했다. 상대도 아즈데카 사람이라면 마음을 열고 대화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셈포알라족(Cempoala), 토토나가족(Totonaka)이 코르테스의 진영에 가담했다.
행군은 다시 계속된다. 경치가 이윽고 초원에서 고원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자주 볼 수 있었던 면화나 토마토는 가시 돋은 육질의 선인장으로 바뀌어 갔다. 부드러운 지면은 자갈밭으로 변해갔다. 이 지경은 트라슈칼라(Tlaxcala)족의 영지라는 것이었다. 이 고원에 사는 종족은 아즈데카족 마저도 인정하는 맹렬하고 호전적인 산악부족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이 부족과의 싸움은 매우 가혹하였다. 귀중한 말 여러 마리와 50명 정도의 스페인 병사를 잃었다.
그러나 대포나 화승총, 강철제의 검이나 갑주는 싸움에서 그 위력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특히 말을 탄 기병의 모습은 이상한 모양의 생물로 비친듯하여 그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여 대 혼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몇 차례 싸운 후 트라슈칼라족은 코르테스가 제시한 화평을 승낙하고 동맹으로 가담할 결의를 하였다.
이렇게 행군을 시작하여 반년 후 코르테스의 군대와 인디오의 동맹군은 마침내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는 오랜 성새도시 초로란 (Chororan)에 도착했다. 말린체는 여기서도 중요한 정보를 코르테스에게 가져다주었다. 초로란부족이 환영하는 척하면서 그 뒤에서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한 것이었다. 이를 들은 코르테스는 선제공격으로 초로란 병사를 광장에 집합시키고 대학살을 행하였다. 이때만은 말린체는 너무나 잔혹함에 실망하여 의식을 잃었다. 아즈데카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왔는데 과연 내가 옳았는가?
그녀의 마음속에서 코르테스에게 분노를 느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초로란도 함락시킨 동맹군은 착실히 아즈데카제국의 수도 테노츠티트란으로 숨어 들어갔다. 산 공기는 차고 희박해지고 때로는 함박눈이 흩뿌렸다.
험한 산길을 지나는 사이에 갑자기 광대한 멕시코분지가 눈 아래 널려 있었다. 장병들 중에는 무심중에 한숨을 쉬는 자도 있었다.
크고 작은 호수로 둘러싸인 커다란 호수의 한가운데에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도시가 떠올랐다. 이것이야말로 꿈속에 보던 아즈데카의 수도 테노츠티트란이다.
아즈데카의 수도 테노츠티트란은 텍스코코호(Texcoco)에 뜬 작은 섬 위에 세워졌다. 시내로 들어가려면 호수를 이분하는 폭 8미터, 길이 7킬로미터의 돌로 포장된 제방 위의 길을 건너야 한다. 코르테스는 말을 타고 화려하게 행진하여 간다. 그 뒤를 깃발을 들거나 강철제의 도검을 가진 스페인 병사의 대열이 이어진다. 제방 길은 도중에 폭 5미터의 수로가 있어서 다리가 걸려있다. 다리를 건너면 갑자기 시야가 넓어져서 거기는 별천지이다. 하얀 빛 신전이나 궁전의 일부가 눈앞에 나타난다. 엄청나게 거대함에 압도당할 만하다.
주위에서는 환성이 울린다. 가슴을 치는 고동이 머릿속에서 쿵쿵 울리는 것이 들릴 정도이다.
수도 테노츠티트란 입성
테노츠티트란에 입성한 코르테스는 아즈데카제국 모크테즈마 황제와 만났다. 모크테즈마는 키가 크고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는 40세 전후의 야윈 체격의 남자이다. 일견 우호적으로 대하기는 하여도 그의 복잡한 표정으로는 얼마나 코르테스의 눈치를 보고 액을 털어버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이 엿보였다.
코르테스 일행은 신전의 한 구석을 배당받아서 거기서 야영하기로 하였다. 그 후 시내 구경을 허락 받은 코르테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신전의 하나에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아즈데카의 신전
부하를 거느리고 숨 막히는 140계단을 올라 간신히 신전 꼭대기에 오른 코르테스는 거기서 호수 가운데 있는 거대도시 테노츠티트란의 장대한 전경을 한눈으로 보았다. 자연과 잘 조화된 기하학적인 인공미가 거기에 있었다. 영혼이 흔들린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 오른 쪽에는 휘칠로포츠트리(Huitzilopochtli) 신전이 솟아 있고, 그 양 곁에는 웅대한 피라미드, 거대한 탑이나 조각상 등이 정연히 서 있다. 주위는 내다볼수록 코발트블루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햇빛을 받아서 번쩍이는 호수면 사이를 카누가 무수히 오가는 것이 보였다. 아득히 호숫가에는 길게 이어지는 백아의 거리가 바라다 보였다. 멀리 우뚝 솟아서 하얀 연기를 뿜고 있는 것은 아즈데카인이 <슬픔의 산>이라 부르는 활화산인가.
너무나 장대한 파노라마에 코르테스는 경탄의 한숨을 쉬며 목전에 펼쳐지는 테노츠티트란을 보고 있었다. 이만큼 장려하고 웅대한 수향을 본 일이 없다. 아마도 장대함과 아름다움은 소문으로만 듣던 베네치아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 눈앞에 나타난 광경이 과연 현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마치 끔만 같다.
테노츠티트란에서는 많은 노예들에게서 대접을 받는 매일이었지만 모크테즈마의 의중을 알 수 없는 코르테스는 점점 불안해졌다. 일견 온화한듯하지만 틈을 노리고 타도하려는 생각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 그런 무렵 궁전 일각에서 황금 재보가 감추어진 비밀의 방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엄중히 입을 닫게 하였으나 이 소식은 전군에 알려졌다. 부하인 스페인 병사나 트라슈칼라(Tlaxcala)족이 황금에 눈이 어두워져서 반란을 일으킬 위험성마저 나타났다. 이런 때문에 서둘러 아즈데카 정복이라는 목적을 장병에게 알려 전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하여 어떤 수단을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코르테스는 잘 생각한 후에 구실을 붙여서 모크테즈마를 그들의 궁전에 유폐시키기로 하였다.
테노츠티트란 일시 탈출과 내란
그런 때에 800명의 새로운 스페인 병사가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쿠바 총독
벨라스케스(velazquez)가 무단히 내륙을 침공한 코르테스에 분노하여 토벌하려고 파견한 코르테스 토벌군이었던 것이다.
어물거리다가는 총독이 파견한 토벌군에게 처형당할는지 모른다고 판단한 코르테스는 300명 정도의 병사를 테노츠테트란에 남겨두고 상륙한 스페인군을 요격하기 위하여 해안으로 급히 나간다. 코르테스가 이끄는 병사는 90명 정도이다. 이것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 코르테스에게는 한 가지 꾀가 있었다. 그곳 지형을 알고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그는 스페인 병사들 앞에서 연설하였다.
<우리는 테노츠티트란을 제압하였다. 지금이야말로 힘을 합하여 스페인 왕을 위하여 봉사해야 할 때이다. 황금 모두는 제군들에게 분배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따르겠는가?>
물론 그의 말에 반대할 자는 없다. 이리하여 토벌군을 설득하고 우군으로 편입시켜 천 명 가까운 부하를 거느리고 다시 테노츠티트란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 때 테노츠티트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 심각한 사태에 빠져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남아서 진을 지키고 있을 스페인 병사들은 황금에 눈이 어두워져서 수백 명의 아즈데카 귀족을 학살하고 몸에 지니고 있던 장신구나 금품을 빼앗은 것이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아즈데카의 시민이 격분하여 일어선 것이었다. 그들은 스페인인을 내쫓으려고 일치단결하여 맹렬한 공격을 가해온 것이었다.
코르테스가 테노츠티트란에 돌아와 보니 도시는 고요했다. 스페인 병사들은 식료도 물도 부족하여 빈사상태가 되어서 신전 일각에 몰려 있었다. 그들 사이에 있던 말린체에게 들으니 아즈데카인들은 유폐된 아무런 권한도 없는 모크테즈마에 대신하여 아우인 쿠이토라우쿠(Kuitorauku)를 새로운 황제로 세웠다는 것이다. 아즈데카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매우 맹렬하였다.
코르테스의 요청으로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민중들 앞에 모크테즈마가 나섰으나 배신자라 매도하며 오히려 분노를 더 일으키게 되었다. 돌과 화살이 비 오듯 날아와서 모크테즈마는 지면에 쓰러지고 말았다. 모크테즈마는 자신의 지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충격이 컸다. <나는 배신당하였다. 나는 아즈데카인에게 배신당하였다.> 그는 헛소리처럼 그 말만 되풀이 하다가 3일 만에 말린체의 손을 잡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테노츠티트란 탈출
모크테즈마가 죽어버린 이상 이제는 아무도 그들의 분노를 달래주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되고나면 이곳을 탈출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래서 필사의 탈출극이 벌어졌다. 맹렬한 돌팔매와 화살이 날아드는 속에 희생자의 시체를 방패삼아 죽은 시체를 밀어재치면서 나아갈 뿐이다. 이렇게 하여 탈출할 수 있었던 사람은 전체의 3분의 1정도였다고 한다. 스페인 인들에게 따르던 인디오도 거의 전멸 상태였다. 대포도 화승포도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나 코르테스로서는 가장 기쁜 것은 말린체가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겨우 탈출이 끝난 후 남은 사람들 속에 그녀의 모습을 본 코르테스는 처음으로 울었다. 평상시에는 침착 냉정하여 약한 소리를 하지 않았던 코르테스는 지친 부하들 앞에서 말린체의 손을 잡고 울어버린 것이다.
그런 정도의 가혹했던 탈출극이었다. 말린체의 마음도 같았다. 코르테스의 통역이기도 하고 아내로서 함께 지내던 말린체는 이때만큼 코르테스의 애정을 느낀 바는 없었다. 이젠 죽거나 살거나 한 몸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과업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참담한 패배를 경험한 코르테스는 살아남은 병사들을 모아 다시 테노츠티트란을 뒤로 하고 그곳을 8개월 만에 떠난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첨하여 공물을 보내곤 하였다. 위협하거나 속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험한 산악지대를 통하고 인디오의 습격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마침내 당도한 것이다. 말할 수 없이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하다.
그 후 천연두가 맹위를 떨쳐 피아를 물을 것 없이 멕시코 전체를 휩쓸었다. 면역력이 없는 인디오들은 발병하면 고열이 나고 몸에 반점이 생기고 얼마 없어 사망했다. 코르테스가 철수해버린 후의 테노츠티트란에서는 아즈데카족의 태반이 죽어버렸다. 신황제 쿠이토라우쿠(Kuitorauku)도 전염병으로 죽었다. 신대륙에서 전해온 생물 병기야말로 아즈데카제국의 멸망에 크게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테노츠티트란 재정복
그런 5개월 후에 1520년 12월 28일 코르테스는 다시 테노츠티트란을 정복하려 하였다. 그의 부하 40명과 기병을 비롯하여 600명의 스페인 병사들이다. 행군 도중 지금까지 아즈데카족에 시달림을 받던 부족이 차례차례로 가담하여 그 수는 15만 명이나 되었다. 거대화한 코르테스의 군대와 인디오의 동맹군은 테노츠티트란으로 진격하였다. 이리 하여 아즈데카제국의 멸망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아즈데카족으로부터 공동전선을 쳐서 스페인인과 싸우자는 요구가 있었지만 거부당하고 있었다. 제국 내의 어떤 종속국도 아즈데카제국에 동조하는 부족은 없었다. 오랜 동안의 압정으로 아즈데카족은 다른 부족의 미움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아즈데카족은 사면초가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코르테스는 테노츠티트란에 도착하자 포위하여 군량 공급로를 공격하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안부를 눌러 수도에로의 보급을 차단한 것이다. 최초에 사기가 왕성했던 아즈데카족도 차차 약해졌다.
연안부에서는 대포가 연속 발포되어 아즈데카족을 날려버렸다. 대량의 돌과 흙이 운반되어서 다리가 끊인 곳을 매웠다. 이윽고 스페인군이 쳐들어갔다. 굶주리고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아즈데카족에게 침략에 대항할 힘은 없었다. 운하에는 아즈데카족의 시체가 쌓여갔다.
급속히 촛불이 꺼지듯이 아즈데카족의 저항은 약해졌다. 이것이 이즈데카제국의 최후의 모습이었다. 아즈데카 최후의 황제 쿠아우테모크(Cuauhtémoc、1495년경 - 1525년)는 전면 항복을 승낙하였다. 6만의 아즈데카 병사는 모든 무기를 버리고 1521년 8월 13일 아즈데카제국은 멸망했다.
말린체의 죽음
그 후 말린체는 코르테스의 아이를 임신하였다. 1523년 말에 말린체는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의 미름은 마루틴 코르테스(Marutin Cortez)라 이름을 붙였다. 코르테스는 이미 자신의 후계자가 생긴 것을 매우 기뻐하였다. 그 사이에도 그가 다스리는 멕시코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분출했다. 스페인 본국으로부터도 많은 관리가 보좌로서 속속 도착하였다. 그 실체는 그를 감시하기위한 관리로서 틈만 있으면 코르테스의 죄상을 밝혀 권한을 박탈할 태세였다. 또 국내에서도 그의 부하가 공연히 반기를 들곤 하였다. 반란과 음모가 소용돌이쳤다.
그런 때문에 코르테스는 안정되지 못하고 말린체를 데리고 각지의 진압에 출정하곤 하였다. 그런데 그 말렌체가 산후 조리가 충분하지 못하고 행군에 지쳐서 몸이 날로 쇠약해지고 결국 병상에 누워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죽기 직전 코르테스는 눈물을 흘리며 숨 가쁜 말리체의 손을 잡고 열심히 간호했다. 아직 4살이 되지 못한 아들 마루틴이 아무 것도 모르고 쳐다보고 있었다. 말린체는 또렷한 소리로 코르테스의 눈을 보며 말하였다.
<나는 멕시코의 여자인데 아즈데카를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배신자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멕시코를 위하여 죽습니다. 나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이 되어서 되살아납니다. 그것이 아즈데카의 관습입니다. 반드시 멕시코가 새로 태어날 것을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말린체의 표정은 매우 평온하게 보였다. 참으로 한 순간 말린체의 눈에는 불꽃같은 광채가 빛났다. 코르테스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말린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노예의 신분이었던 그녀와의 초대면에서부터 가지가지의 신고를 겪은 수 년 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말린체는 눈을 감고 영면하였다. 때는 1527년, 아즈데카제국 멸망 후 6년 뒤의 일이었다.
코르테스의 비운의 말년
그 후 코르테스의 운명은 하강하기 시작하였다. 몇 번 스페인 본국과 멕시코를 왕복하면서 한 때는 탄원도 하고 변명도 하였다. 이르는 곳마다 그의 성공을 질투하는 자가 있었다. 나락으로 빠지는 비운의 코르테스에게 신은 무자비하였다. 이윽고 코르테스는 자금이 부족하여 남의 돈을 빌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멕시코 정청의 그의 영토를 몰수한다는 법령에 격노한 코르테스는 국왕에게 직소한다고 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것이 최후의 항해가 되고 말았다. 그는 본국에서 여기 저기 쫓아다녔으나 중요한 회의에도 출석이 허용되지 않았다. 비탄에 싸인 채로 1547년、세비리아 근교에서 62세 로 사망했다. 유해는 그의 유언에 따라 멕시코시티라 개명한 테노츠티트란에 그 자신이 세운 병원내의 예배당에 매장 되었다. 마린체가 죽은 지 20년 후의 일이었다.
한편 아들은 얼마동안 마드리드에 남아서 살았으나 그가 40세 때에 멕시코에 돌아갔다. 그러나 1년 후 반정청의 음모에 가담하였다는 죄명으로 투옥되었다. 그 후 멕시코에서 영구 추방되었다. 동시에 스페인 궁정에서도 동시에 스페인에서 추방당하였다. 그 후의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
현재 말린체의 자손들은 멕시코의 풍토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장래의 번영을 담당할 중요한 존재들이다. 말린체는 조국을 배신한 자이기는 하였으나 지금은 신화화하여 미래를 낳는 상징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곧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헌신한 여자라는 뜻이다.
아즈데카 태생의 말린체는 새로운 멕시코의 말린체가 되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있을 것이다. 베라크루즈((Veracruz) 주에는 말린체의 동상이 서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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