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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우주

우주에서 배운 삶과 죽음의 경계점 (5/8)

간천(澗泉) naganchun 2024. 6. 4. 03:23

우주에서 배운 삶과 죽음의 경계점 (5/8)

 

 

5, 죽음을 의식한 사고

 

 

우주 관광을 포함해서 우주로 가는 일에 대하여 주의가 집중되고 있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우주비행의 위험성은 이 20년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1회째의 비행보다 2회째 3회째의 비행 방법이 안전했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우주왕복선은 135회의 비행 중 2회의 고장을 일으키고 있다. 단순 계산하면 우주비행에 있어서 사고의 확률은 70회에 1회이다.

한편 비행기에서의 사고 발생률은 일설에서는 약 10만 회에 1회라고 말한다. 비행기에 탈 때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험이 우주비행에는 있다.

 

우주왕복선이나 소유즈와 비교해서 스페이스 엑스의 크루 드레곤의 안전성이 유의하게 안전한지를 묻는다면 그런 일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페이스 엑스도 한 때 쏘아 올리는 데에 실패가 계속되었다는 일도 있어서 <스페이스 엑스의 기체는 위험하지 않은가?> <만족하게 시험비행도 하지 않는데 참으로 쏘아 올려서 괜찮은가?>하고 NASA의 안전 평가팀과 의론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는 유인 비행은 성공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후에도 백발백중으로 안전하다고는 반드시 말할 수 없다.

 

나는 지금이라도 2003년에 일어난 귀환 시에 공중 분해한 콜롬비아호의 사고를 생각한다.

나로서는 처음의 우주비행까지 겨우 1개월에 다가섰던 때에 쏘아 올려진 것이 콜롬비아호였다.

컬럼비아호의 그룹이 프로리다의 발사대가 있는 케네디우주센터로 향하는 전날 잠간 그중의 한 사람을 NASA의 화장실에서 만났다.

<언제 우주에 가는가요.> <내일 케네디우주센터에 갔다 온다.> <그런가! 그럼 나도 1개월 후이니까 그 때에 다시 만나자.> 하고 말을 나눈 것을 기억한다. 그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갔는데 그것이 내가 그를 본 최후의 모습이었다.

 

우주비행사는 언제 죽을는지 모르므로 나는 날기 바로 직전에 반드시 <유서>를 쓴다. 불타오르는 캡슐 속에서 <이것을 가족에게 전했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게 되지 않도록. 내용은 은행계좌의 정보라든지 재산처리라든지 사무적인 것이지만 가족들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컬럼비아호의 공중분해 사고 이후 <죽음의 위험을 짊어지고서 우주로 가는 의미는 무엇일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우주 공간에서의 실험으로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에 공헌할 수도 있고 훈련으로 연마한 기술을 구사하여 자기실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 같은 정도로 <우주로 가는 것으로 인류는 혹은 나는 무엇이 바뀌는가?>하는 물음을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느낀다.

 

NASAJAXA도 포함하여 이제까지 우리들은 수치화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적인 변화에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우주비행을 겹칠 때마다 강해진다.

 

그런 점에서 나의 우주비행사로서의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틀림없이 먼저 말한 선외활동에 있다.

이제까지 335일간을 ISS에서 지내왔는데 나는 ISS내에서의 300일분의 체험보다도 일순간의 선외활동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에 있다고 해도 ISS에 있을 때에는 <건물 안에 있다.>는 감각이다. 그것이 한 번 선외활동이 되면 막히는 것이 없고 자신이 죽음의 세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고 생명이 기척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벗겨진 우주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