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돌봄의 시대

돌봄의 시대 28 숫자로 번역된 하루: 요양원의 엔젤시스템

간천(澗泉) naganchun 2025. 5. 11. 05:33

요양원의 하루는 많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할머니들이 아침에 어떤 꿈을 꾸셨는지, 누구와 티격태격하셨는지, 어떤 음식이 오늘 입맛에 맞으셨는지, 뭘 보고 웃으셨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자주 사랑스러운 고집을 부리셨는지. 이런 이야기들은 보호사들의 눈과 손끝에서 매일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따뜻한 드라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엔젤시스템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은 차갑고 기계적인 숫자로 번역된다.

 

할머니가 오늘 설사를 다섯 번 하셨다고? 엔젤시스템에는 세 번으로 기록한다. "너무 많게 적으면 관리자가 뭐라 하니까요." 보호사들은 기계적으로 입력하며 생각한다. "정확성을 따질 거면 설사 하나하나를 기록할 시간을 주던가요."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 그건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걸. 결국 기록은 그냥 숫자 놀이가 된다.

 

할머니가 아침에 우울한 표정을 지으셨다가, 점심에는 미소를 보이셨고, 오후에는 손녀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셨다고? 그런 건 적히지 않는다. 대신 엔젤시스템에는 이렇게 입력된다. “케어 횟수 2회, 배변 케어 1회, 양치질 1회, 식사 도움 1회.” 그 속에 할머니의 감정이나 하루의 흐름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시스템은 감정을 모른다. 기계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기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엔젤시스템이라는 정량적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수기로 작성하는 노트다. 노트에는 보다 구체적인 정보가 적힌다. 할머니의 발톱을 언제 깎았는지, 어느 쪽 팔꿈치에 약간의 욕창이 생길 조짐이 있는지, 언제 어떤 연고를 발라드렸는지 같은 세부 사항들이다. 그러나 이 역시 문학적인 감정이나 서사는 없다. 단지 "손톱 케어 완료", "왼쪽 팔꿈치에 X연고 도포" 같은 임상적인 메모일 뿐이다.

 

엔젤시스템의 숫자와 노트의 임상적 문구 사이에서 할머니들의 삶은 희미해진다. 할머니가 아침에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좋아하셨던 순간, "내 옷이야?"라며 미소를 짓던 장면은 기록되지 않는다. 대신 시스템에는 “의복 교체 1회”라고 쓰인다.

 

가끔 걸어다니시는 할머니들의 경우 더 복잡하다. 보호사는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지 알 수 없으니, 모든 것을 대충 "추정"해야 한다. “화장실 사용 1회”라고 입력하지만, 정말로 그분이 몇 번을 다녀오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식사 50% 섭취”라고 적지만, 실제로는 누군가 밥을 옮겨주시기 전까지 반찬만 골라 드셨을지도 모른다. 기록은 항상 그렇게 흐릿하고, 대강 맞춰진 퍼즐처럼 들어맞는다.

 

어디선가 "정확한 기록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확하게 적으면 왜 이렇게 했냐고 묻는다. 어쩌면 시스템은 완벽히 정량적인 척하는 연극일 뿐인지도 모른다. 엔젤시스템에 기록된 숫자는 요양원 밖으로 나가는 보고서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어르신들의 "정상적이고 평온한 하루"로 포장된다. 숫자로 가득한 이 보고서는 감정 없는 기계적인 세계에서 문제없이 작동한다. 하지만 그 숫자 속엔 하루 종일 울며 고집을 부리시던 할머니의 모습도, 친구가 면회 온 날 웃음을 감추지 못하시던 할머니의 모습도, 설사로 힘들어하셨던 순간의 고단함도 없다.

 

숫자와 시스템 속에서 모든 것은 표준화되고 단순화된다. 하지만 보호사들은 알고 있다. 그 숫자 속엔 감춰지지 않는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머리를 빗겨드릴 때,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드릴 때, 손을 잡아드리며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 그 순간들은 엔젤시스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어르신들의 하루를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든다.

 

어쩌면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너무 '엔젤'스럽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보호사들이 하루 종일 날개를 달고 완벽히 움직이며 정량적 데이터를 채우는 천사여야 한다는 듯, 감정과 고단함은 지워지고 숫자만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보호사도, 할머니도, 그리고 그들의 하루를 이루는 작은 해프닝들도. 기계와 숫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이 숫자들 대신, 오늘 어떤 꽃무늬 앞치마가 빛났는지, 누가 어떤 미소를 지었는지, 설사로 힘들어하셨던 어르신이 결국 웃음을 되찾았는지 기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엔젤시스템은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우리는 그 속에서 진짜 이야기를 간직한 채 숫자를 입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