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고대 도시 페트라 – (끝)
==한때는 3만 명이 살았던 장밋빛 고도(古都), 누가 만들고 왜 버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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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의 성쇠
<페트라>에는 기원전 7 세기 무렵부터 선주민이 살기 시작하였는데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아라비아 북방에 살던 유목민족인 <나바타에(Nabataeans)>인이 선주민인 <에돔(Edom)>인을 몰아내고 <나바타에>인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나바타에>인은 아라비아 부근의 홍해, 지중해, 시리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대상무역을 독점하여 <페트라>는 고대 <나바타에> 유력한 도시로 번영하였다.
<페트라>의 특징으로서 향신료교역의 거점 기능과 치수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완전한 암벽지대여서 농업에는 적합하지 않고 다시 비가 내리면 물이 바로 계곡으로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나바타에>인은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고 수도관을 통하여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원전 64년에서 63년경 <나바타에>인은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하여 지배당하게 되어 로마는 그 자치를 허용하였으나 세금을 부과하고 다시 사막에서 진입하는 이민족의 완충지대로 삼았다.
서기 106년에는 로마 황제 <트라여누스>에 의하여 <페트라>와 <나바타에>인은 로마의 아라비아 속주로 완전히 병합되었다. 로마에 병합되어 교역 루트가 로마에 지배당하게 되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4세기 무렵부터는 기독교 세력이 강해져서 <나바타에> 건물이 기독교풍으로 바뀌었다. 이 무렵에 몇 차례 지진으로 파괴되고 8세기 무렵부터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그 후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기도 하고 십자군이 요새를 구축하기도 하였으나 세계에서 잊어버린 폐허가 되고 말았다.
<나바타에>인은 처음에는 <알람>문자를 썼으나 후에 <나바타에> 문자를 만들어 그것이 현재 아라비아 문자의 근원이 되고 있다. 비문, 화폐, 조각, 도자기 등이 출토되고, 요세프스의 <유태 전기(戰記)>, <유태 고대사> 등에 기술되고 있다.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르드비히 부루쿠하르츠(Johan Roudvighi Burukuharutsu)>가 십자군 이후 최초로 유럽에 소개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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