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이클 파라데이 이야기.(2-2/4)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 풍부한 전기세대의 막을 열다.=
2) 만년과 사거
1832년 6월 옥스퍼드대학은 파라데이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하였다.
파라데이는 종생 나이트 명예를 계속 사퇴하고 1858년에는 왕립협회회장직을 1865년에는 왕립연구소소장직을 사퇴하고 있다. 1838년에는 스웨덴왕립과학아카데미의 외국인회원으로 선발되고 1844년에는 프랑스과학아카데미의 8명의 외국인회원의 한 사람으로 선발되었다.
1848년 알버트왕배전하(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Consort, 1857-1861)의 요청에 따라 함프톤 코트 궁전(Hampton Court Palace)에 무료로 입주하게 되었다. 1858년 은퇴하기까지 거기서 살았다.
크리미아전쟁(1853-1856) 때에 정부에서 화학무기를 만들어줄 수 없는가 하는 요망이 있을 때에 윤리적인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다. 그는 책상을 치며 이렇게 말했다. <만드는 것은 쉽다, 그러나 절대로 손을 빌리지는 않는다.>하고 말했다 한다. 파라데이는 강한 평화주의자였다.
1867년 8월 25일 함프톤 궁전 내의 자택에서 의자에 앉은 채로 잠자듯이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웨스트민스터시원에 매장을 거부했었는데 아이작 뉴턴의 묘 곁에 기념명판이 설치되었다. 유체는 하이게트 묘지(Highgate Cemetery)의 비국교도(非國敎徒)를 위한 구역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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