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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암벽 유적 페트라(Petra)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09. 12. 8. 15:56

 

암벽 유적, 페트라(Petra) 이야기

 

 

 

 

 암벽건물

 

 

 

 

요르단의 암벽 유적

 

 

<페트라(Petra)>는 <요르단>에 있는 유적이다. 사해와 <아카바>만 사이에 있는 계곡으로 사해에서 약 80 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다. <페트라>란 그리스어로 <바위>를 의미한다.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페트라>가 있는 지역은 자연의 요해로서 서쪽으로 <가자(Gaza)> 북쪽으로 <다마스커스(Damascus)> 홍해에도 가까워서 중동에서 사람과 물건의 오가는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페트라>의 성쇠

 

<페트라>에는 기원전 7 세기 무렵부터 선주민이 살기 시작하였는데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아라비아 북방에 살던 유목민족인 <나바타에(Nabataeans)>인이 선주민인 <에돔(Edom)>인을 몰아내고 <나바타에>인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나바타에>인은 아라비아 부근의 홍해, 지중해, 시리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대상무역을 독점하여 <페트라>는 고대 <나바타에> 유력한 도시로 번영하였다.

<페트라>의 특징으로서 향신료교역의 거점 기능과 치수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완전한 암벽지대여서 농업에는 적합하지 않고 다시 비가 내리면 물이 바로 계곡으로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나바타에>인은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고 수도관을 통하여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원전 64년에서 63년경 <나바타에>인은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하여 지배당하게 되어 로마는 그 자치를 허용하였으나 세금을 부과하고 다시 사막에서 진입하는 이민족의 완충지대로 삼았다.

서기 106년에는 로마 황제 <트라여누스>에 의하여 <페트라>와 <나바타에>인은 로마의 아라비아 속주로 완전히 병합되었다. 로마에 병합되어 교역 루트가 로마에 지배당하게 되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4세기 무렵부터는 기독교 세력이 강해져서 <나바타에> 건물이 기독교풍으로 바뀌었다. 이 무렵에 몇 차례 지진으로 파괴되고 8세기 무렵부터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그 후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기도 하고 십자군이 요새를 구축하기도 하였으나 세계에서 잊어버린 폐허가 되고 말았다.

<나바타에>인은 처음에는 <알람>문자를 썼으나 후에 <나바타에> 문자를 만들어 그것이 현재 아라비아 문자의 근원이 되고 있다. 비문, 화폐, 조각, 도자기 등이 출토되고, 요세프스의 <유태 전기(戰記)>, <유태 고대사> 등에 기술되고 있다.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르드비히 부루쿠하르츠(Johan Roudvighi Burukuharutsu)>가 십자군 이후 최초로 유럽에 소개하였다.

 

 

<페트라>의 유명한 유적들

 

 

1) <시크(Siq)>

<시크(Siq)>는 약 1.5 킬로미터의 바위틈으로 <페트라>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이다. 높이 60-100 미터의 높은 바위의 틈새이기 때문에 온 종일 햇볕이 들지 않고, 건조한 기후로 초목은 거의 자라지 않는다.

천연을 이용한 요새이다. 댐이나 수로가 여기저기서 보여 고도의 기술을 자랑했던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시크(바위틈 길)

 

 

2) <엘 하즈네(El Khazneh)>

기원전 1-2세기에 만들어졌다는 보물전(寶物殿)이라는 높이 30 미터의 신전풍의 건물이다. 최근 그 안을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보물전

 

3) <고대로마 원형(Roman Amphitheater)극장>

로마제국 시대의 원형극장이 남아있다. 고대 로마극장은 바위를 깎아 계단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사람의 오르고 내리는 바람에 많이 부서져 있다.

 

극장

 

4) <분묘군>

바위를 뚫고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있는데 신전 같기도 하고 궁전 같기도 하고 분묘 같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왕가의 묘 등의 분묘군이다.

<항아리 모양의 분묘(壺形墳墓)> 암석의 무늬가 아름다운 <실크의 묘> <고린토식 묘> 등이 유명하다.

 

왕궁분묘

 

5) <도시유적군>

도시의 자취였던 양쪽으로 궁전, 관청, 상점, 시장, 목욕탕 등이 줄지어 있었던 도시의 중심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열주도로가 남아있다. 최성기에는 3만의 인구가 있었다 한다.도로의 끝에 있는 것이 <개선문> 그 속으로 바위산을 배경으로 한 <나바테아>인의 신을 모신 <가스트 알 빈트(Gast al bint)>의 신전이 남아있다. 바위산을 오르면 <엘 하비스 박물관(El Habis museum)>이 있어서 조망하기에 좋다. <페트라>는 <장미의 시가지>라고 하는데 바위 그 자체가 붉거나 오렌지 색, 검거나 노란 색으로 무늬를 이루고 있다.

 

 

바위 문양

 

6) <에드 데이르(Ed Deir)>

전승기념으로 1세기에 지어진 신전으로 <엘 하즈네>가 있다.이곳은 수도원이라 한다. 안은 사각형 방인데 텅 비어있다.

 

수도원

 

7) <희생제단(High Plase of Sacrifice) 자취>

<페트라>의 중심부로부터 <에드 데이르> 반대쪽으로 약 1시간 정도를 가면 <제단 흔적>이 나타난다.

 

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