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전쟁에서 일어나는 속임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 때로는 방편이 필요하다.
거짓말이란 전적으로 효과는 없지만 때로는 유효한 경우도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 사업이나 사생활에서나 때로는 거짓말을 쓰는 경우가 일이 잘 되기도 한다.
전쟁에서는 거짓과 참의 정보가 섞여서 거짓 정보가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1, 겨우 6명의 병력으로 베오그라드 시를 항복시킨 거짓(독일)
26세의 후리쓰 구린겐버그는 유고슬라비아에 침공한 나치 친위대 장교로서 베오그라드를 즉시 함락하고 바로 그리스로 향하라는 본국으로부터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구린겐버그와 6명의 부하가 베오그라드에 상륙하였을 때 베오그라드 공략을 위한 병력이나 무기를 운반하고 있던 선박이 침몰하였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일시 작전을 중단할 형편이었는데 구린겐버그는 이 6명으로 베오그라드를 함락할 것을 결의하였다. 왜냐하면 즉시 그리스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구린겐버그와 6명의 부하는 먹지도 못한 채로 베오그라드에 들어가 언제나 하던 것처럼 파트롤을 시작하였다. 구린겐버그의 부하들에게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있으면 즉시 사살하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베오그라드 시청사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고슬라비아의 국기를 내리고 나치스 독일기를 게양하였다.
놀란 베오그라드 시장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구린겐버그에게로 달려갔다.
구린겐버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대규모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시내를 파트롤하고 있는 것이다. 베오그라드시가 항복했다고 지금 내가 라디오로 전하지 않으면 잠시 후에 폭격기로 인한 대규모의 공격이 시작될 예정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속임수이었다. 대규모의 공격 같은 것은 예정되지도 않았고 원래 구린겐버그는 라디오 무선기 마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위협당한 베오그라드 시장은 즉시 항복을 결정하였다. 구린겐버그는 겨우 6명의 병사로 1,300명의 병사를 포로로 잡기에 성공하여 <기사철십자장>을 받았다.
2, 폐자재로 만든 모작품으로 전함 구출에 나서다(미북군)
USS 인디아놀라(Indianola)는 남북전쟁 중에 활약한 북군의 하천전함으로 3인치의 강철로 덮여진 당시 최강의 포함이었다. 미시시피강 함대의 일원으로 남군의 요새에 대하여 공격을 가하지만 1863년 2월 24일 남군의 공격으로 손상을 받아서 남군에 나포되었다.
인디아놀라 나포는 북군으로서는 커다란 손상이었고 탈환을 생각하지만 그런 예산은 없었다. 그래서 딕손 포더라는 군인이 현재의 예산 170달러를 써서 낡은 항아리와 폐자재를 모아서 겨우 12시간 정도 안에 거짓 전함을 구축하였다.
딕손 포더는 이 위작 전함에 타서 인디아놀라의 구출에 나섰다. 남군에서는 돌연 나타난 전함으로 패닉 상태가 되어 도망하였다. 무사히 인디아놀라 구출에 성공하였다. 인디아놀라는 미시시피 함대에 복귀하여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3, 종군기자가 적의 전화에 적당히 대답하여 침공을 막다(미국군)
마이케르 튜니고는 알바니아계 미국인으로 제3보병연대 소속 종군기자였다.
그는 복수의 언어에 정통하고 있어서 연합군이 시칠리섬 상륙에서도 그 언어의 능력은 크게 역할을 하였다.
하스키 작전이 개시된 연합군이 시칠리섬에 상륙을 감행한 마침 그 수륙양용차로 해안에 상륙한 튜니고는 이탈리아군이 남긴 참호 속의 전화가 울리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수화기를 드니 상대는 이탈리아군 장교였다. 저쪽은 패닉상태였다.
<어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 미군이 상륙했다는 것이 참말인가?>
튜니고는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대답했다.
<안심하십시오. 장군. 그런 사실은 일체 없습니다.>
이 거짓말이 어느 정도 연합군의 작전에 유리하게 작용했는지는 잘 모르나 적어도 수시간정도 이탈리아군 사령부는 안심하고 지내지 않았겠나.
현장이 아무리 가혹한 형편이었는지는 재껴두고 말이다.
4, 거짓 연돌을 1개 추가하여 영국선 6척을 격침시키다.(독일군)
제1차세계대전 중 인도양 전선에는 칼 폰 뮤라 소령이 이끄는 독일해군 경순양함 엠덴이 주로 영국 상선을 노리고 통상파괴공격으로 크게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경순양함 엠덴은 코롬보 해안. 칼커타 해안에서 영국 수송선이나 석탄선을 파괴하고 돌아다녔다. 마침내 남인도의 마도라스항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 때 뮤라 소령은 3개 있는 배의 연돌에 거짓 연돌 1개를 추가하도록 부하에게 명령하였다.
당시는 독일선은 3개의 연돌이 있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영국 선은 4개가 있었다.
당시 엠덴의 소문은 인도양 전체에 퍼져서 3개의 연돌을 보면 그냥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뮤라 소령은 영국선이 친구 배라고 잘못알고 가까이 접근 하는 것을 노렸다. 과연 작전은 성공하였다. 9일간에 6척의 상선을 침몰시켰다.
그 후 엠덴은 베난을 공격하여 크게 해를 끼쳤는데 고고스제도 해안에서 호주 해군의 전함 시드니와 포격전에서 대파하여 항복하였다.
5, 포로인 나치스장교를 써서 <끌어들이는> 작전(소련군)
소련군은 1944년 5월부터 1945년 5월까지 독일군의 전투원과 물자의 효율적인 포획을 목적으로 하는 <샤혼 작전>을 개시하였다.
이 작전은 독일군사령부에 <소련군과 분투 중 도움이 필요한 부대가 있다.>고 착각시켜서 전투원과 물자를 끌어들여서 그냥 그대로 받아내는 것이었다.
이에 쓰인 것은 실제로 소련군에 포로가 되어있는 하인리히 샤혼 대령이다. 소련군의 명령을 받은 샤혼 대령은 무선을 통하여 사령부에 대하여 몇 천 명의 독일군이 소련의 오지에서 분투 중이라서 무기와 물자의 원조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보통 생각하면 고립무원 상태여서 대군이 소련 영내에서 장기 전투 중이라는 것은 절대 무리한 일일 터인데 이런 정보는 먼저 의심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열세로 계속되는 전세가 거의 결정되어 가는 1944년의 독일군은 <그렇게 했으면> <그럴 것이 틀림없다.>라는 바람 때문인지 이 괴상한 정보를 믿어버렸다.
독일군은 <샤혼 부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39회나 항공기로 물자공금을 행하고 그것을 전부 소련군이 접수하였다.
샤혼은 사령부에 부대의 응원을 호소하여 본국으로부터 숙련병으로 구성된 2천 명의 부대가 파견되었다. 이들 병력은 바로 소련군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다. 샤혼은 <지원부대 덕분으로 공격은 성공했다.>고 거짓 정보를 보고하였다.
이런 공으로 샤혼 대령은 <기사철십자장>을 받았다.
소련군이 베를린에 가까이 갔어도 샤혼 대령은 연락을 계속하였는데 사령부도 여유가 없어서 지원은 서서히 감축되었으나 패전할 때까지 샤혼 대령과의 콘택트는 계속되었다.
출처=reki.hatena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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