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잰 앙리 카지미르 파브르 이야기(1/5)
==뛰어난 관찰안으로 벌레들의 드라마를 표현한 곤충 시인 ==
잰 앙리 카지미르 파브르
1. 개요
잰 앙리 카지미르 파브르(불어 ; Jean-Henri Casimir Fabre、1823-1915)는 프랑스의 박물학자이고 교과서작가, 학교교사. 시인으로서 업적을 남겼다. <나는 살아있는 것을 연구한다.>는 주장으로 곤충의 행동연구의 선구자이고 연구 성과를 정리한 <곤충기>로 유명하다. 동시에 작곡 활동도 해서 프로방스어문예부흥의 시인으로서도 알려진다.
2. 생애
2.1. 유년에서 청년 시절
장 앙리 파브르는 1823년 12월 22일 프랑스 남부 생레옹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빈농으로 매우 가난했으며, 파브르는 4살에 할아버지 댁으로 보내졌다가 7살에 생레옹으로 돌아왔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파브르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아 벌레들을 관찰하며 즐거움을 찾았다.
파브르는 초등학교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여러 잡일을 하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19살에 초등 교사 양성 학교에 합격하고 졸업 후 초등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학구열이 높아 1849년에 중학교 화학 교사가 되었고, 이후 고등학교 물리 교사로도 일했다. 교사 생활 중에도 자연 과학 연구를 지속했으며, 학생들과 함께 야외 수업을 하며 자연에 대한 열정을 나눴다.
파브르는 정규 학자가 아닌 교직 생활을 하며 연구를 이어갔기 때문에 프랑스의 그랑제콜이나 아카데미에 속하지 못했다. 이를 아쉬워했지만, 그의 열정과 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2.2. 곤충학자가 되다
1854년 겨울, 파브르는 레옹 뒤푸르(Jean-Marie Léon Dufour, 1780–1865)의 소책자를 읽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크게 감명을 받아서 곤충학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인 1855년에 노래기벌을 연구하고 발표했으며, 얼마 안 가서 아비뇽의 르키앵 박물관장(Musée Requien)으로 임명된다. 이때 알프레드 모캥 탕동(Alfred Moquin-Tandon, 1804–1863) 교수에게 식물학을 많이 배웠으나, 파브르에게 고마운 은인이던 모캥 탕동은 몇 해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탕동에게 배운 식물학 지식을 통해 여러 연구로 1868년에는 나폴레옹 3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관학파의 비난과 공격으로 인해서 교단과 박물관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르키앵 박물관장에서 물러난 파브르는 과학 보급서를 저술했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했고 여전히 빈곤 속에서 허덕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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