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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위대한 여성

세계최고의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더 보기 2)

간천(澗泉) naganchun 2023. 9. 8. 02:59

세계최고의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더 보기 2)

 

 

독한 모친의 저주로 괴로워한 생애

 

재키와의 놀라운 결혼은 마리아로서는 아픈 배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인연을 되살리고자 하는 오나시스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서 그 후도 관계를 계속하였다.

이처럼 마리아가 찰나적으로 애정을 구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게 된 이유로서는 <독한 모친의 영향>이 많다고 지적되고 있다.

 

모친 에방게리아는 마리아를 어릴 때부터 <밉다> <살이 졌다>고 꾸중하고 언니만 사랑했다. 마리아는 가혹한 가정 안에서의 따돌림에 견디며 성장하였다.

마리아가 유명해지자 모친은 마리아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였다. 조금이라도 돈이 부족하면 기자들에게 딸을 꾸짖는 말을 하고 세상에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었다.

마리아는 <값없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그것은 언제나 <사랑에 목마르고>,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을 받아들였다.>,<무슨 일이 있어도 용서하고 만다.> 이것이 마리아의 연애 경향의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약한 사람>이었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음악의 압도적 실력에 더해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톱으로 군림할 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참으로 가족이 필요했다.

<그것이 오나시스가 아니라도 좋았는데.> 마리아는 오나시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오나시스가 1975년에 사거하자 마리아는 의욕을 잃고 그 후에는 한 번도 무대에 서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뒤를 쫓아가듯이 2년 후 1977년에 심장 발작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53세였다.

 

마리아가 죽은 후 모친과 언니 그리고 전 남편인 메레기니가 유산을 두고 싸움을 벌인 일도 유명하다.

1950년 이후에 모친은 마리아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데도 마리아는 전 생애를 통하여 경제적 원조를 계속했다. 그래서 유서에도 모친과 언니에게로의 원조에 대해서도 명기되고 있고 마리아는 최후까지 독한 가족들을 받치고 있었다 한다.

일본어원문=誕生から成功までマリア・カラスの基礎知識

출처=https://news.yahoo.co.jp/articles/697b74bbddc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