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국 왕비 ‘고루고’ 이야기
고루고(Gorgo)는 기원전 510년 경 스파르타 레오니다스 1세의 비이다. 강한 스파르타군의 비밀은 이 왕비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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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에게 충고하는 어린 딸
기원전 5세기경 소아시아의 연안부에는 그리스인이 만든 식민도사가 다수 있었는데 단기간에 급성장해온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자유를 존중하는 그리스인에게는 견딜 수 없는 굴욕이었다.
미트레스의 참주였던 아리스다고라스는 이오니아의 그리스 여러 도시에 호소해서 마침내 페르시아에게 반기를 들었다.
아리스다고라스는 그리스 본토에도 원군을 청했다. 그리스 본토에는 무수의 도시국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뛰어나게 강한 도시국가였고 강대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리스다고라스는 먼저 스파르타 왕 구레오메네스를 찾아가서
“국왕 폐하, 우리들에게 힘을 빌려주실 수 있다면 10탈렌트(1탈렌트는 황금 50킬로그램)의 황금을 헌상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 반을 내어도 됩니다.”
“그것은 안 됩니다. 아바마마.”하고 소리 지르는 소녀가 있었다. 딸인 고루고이다.
고루고는 어느 새 곁에서 그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오 그러냐. 우리 스파르타는 다른 나라에 원군을 보낼 정도로 여력을 가지고 있지 않소. 게다가 그렇게 먼 곳에까지 원군을 보낸다면 나라를 지키는 데 염려가 있소.”
왕은 고루고의 말을 긍정하면서 말하였다.
“그러면 황금을 2배 바치겠습니다. 아무쪼록 강대한 폐하의 병력의 일부를 우리나라에 원군으로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왕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아리다고라스는 처음에 말한 바의 3배, 4배로 차츰 올리려 하였다. 결국 5배까지 올라갔다.
구레오메네스는 황금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만한 대금이 있다면 몇 백 척의 군함이나 신전이라도 간단히 건조할 수가 있겠구나. 황금의 번쩍이는 빛깔은 금욕으로 알려진 스파르타의 왕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그러자 다시 고루고가 말하였다.
“아바마마, 자라를 뜨시고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대로는 아바마마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왕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거친 말씨로 소리를 질렀다.
왕은 깜짝 제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쌓일 황금을 버리고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아연실색한 아리스다고라스는 하는 수 없이 돌아와야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걱정하던 아리스다고라스는 왕국의 박석바닥에서 늘어진 신발 끈을 노예에게 묶도록 하기 위하여 발을 내밀었다. 이것을 본 고루고는 조용한 소리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손이 없는가보다. 자기스스로 신발도 신지 못하는구나.”
아무리 왕녀라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니 내로라하는 아리스다고라스도 기운이 떨어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고 한다.
또 어느 날, 부왕에게 술 맛을 좋게 하는 방법을 고안한 남자가 칭찬하는 상을 달라는 청을 한 일이 있었다. 왕은 그 청을 받아들여서 상을 주려 하였다. 그런데 고루고는 “그러면 술마시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스파르타는 타락하여 주정뱅이가 많아집니다.” 하고 눈을 부라리고 화를 내었다고 한다.
이처럼 고루고는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기가 세어서 도덕심이 강한 소녀로 알려졌다.
암호를 퍼즐처럼 알아내기를 잘 했다.
스파르타에서 보기 좋게 거부당한 아리스다고라스는 그 후 아테네에서는 교섭을 잘하여 20척의 군함과 중장비의 보병 군단을 이오니아 원군으로 받아들이는데 상공하였다. 덕분에 이오니아의 여러 도시는 페르시아에 대하여 우세로 싸움을 전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저력 앞에 이오니아 연합군은 눌리어 수 년 후에는 함락 당하였다. 미레토스시도 농성하여 최후까지 버텼으나 보급이 끊기어 마침내는 굴복하고 말았다. 성문이 부서지고 패르시아군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가고 남자들은 모두 살해당하였다.
그러나 페르시아왕 다리우스는 그래도 마음이 충분하지 않았다.
“나에게 배반하여 원군을 보낸 그리스에게 징벌을 가해야만 속이 편했다.” 이리하여 시작된 것이 페르시아전쟁이다.
제1회 원정은 마라톤 싸움에서 아테네의 중장비 보병의 밀집전법 앞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다음 왕인 구세루구세스는 강대한 재력으로 두 번째 원정을 기획하였다.
구세루구세스는 바다와 육지 동시에 그리스 본토를 공격하려고 만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헤로도도스에 따르면 그 규모는 300만의 병력, 1천척의 군함, 몇 천이나 되는 전차, 기병 등 엄청난 것이었다. 화살 병은 일제히 활을 쏘는 것으로 하늘이 새까맣게 되었다고 한다.
고루고는 이 때, 30세 정도로 숙부가 되는 레오니다스왕과 결혼하여 스파르타의 왕비기 되었다. 그 때 어디서인지 사자가 통신판을 가지고 왔다. 사자를 보낸 것은 스파르타의 왕으로 지금은 페르시아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데마라도스라고 하는 폐왕으로부터였다.
당시에는 목판에 밀랍을 발라 쇠 조각으로 긁어서 문자를 새겨 통신판으로 쓰이었다. 이것이라면 쓰고 나서는 밀랍을 녹여서 다시 쓸 수가 있었다.
그런데 판을 떼어내어도 표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다 그러나 고루고는 한 번 보고나서 표면의 밀랍을 모두 털어내도록 하였다. 그러자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이 글자가 씌어있는 것이었다.
“페르시아가 대규모의 두 번째 원정을 기획하고 있다. 곧 페르시아의 대군이 출발할 것이다. 즉시 방비할 준비를 하기 바란다.”
데마라도스는 스파르타에서 쫓겨난 몸이지만 조국이 커다란 위기에 처하고 있음을 알고 견딜 수가 없어서 사자를 보낸 것이었다. 데마라도스는 사자가 체포되어서 페르시아로 잡혀 올 수도 있음을 생각하여 비밀문서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고루고는 비밀이나 암호를 즉시 알아낼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다.
스파르타 왕비의 위엄을 나타내다
기원전 480년 이 거대한 페루시아군이 그리스 본토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전번의 실패를 참고하여 페르시아군은 소아시아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육로로 반도를 돌아 침입하려고 하였다. 곧 바다에서는 그리스군은 양동작전을 써서 주력 페루시아육군은 그리스군의 배후에서 공격하려는 작전이다.
그리스 전역에서 도시국가의 대표가 모여 델퓌신전에서 신탁을 받아 페르시아군에 대한 대비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바다에 대한 준비는 아테네가 맡고, 육로에서는 육전에 뛰어난 스파르타군이 주력이 되어 맞기로 하였다. 페르시아군은 전번과는 다른 코스로 그리스의 배후로 침범하려하였다.
그런데 이 루트라면 데로모비레가도를 통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가도는 험한 절벽과 바다 사이의 좁은 길로서 가장 좁은 곳은 노폭이 15미터밖에 안 된다.
결사의 각오로 사수하는 레오니다스 이하 300명의 스파르타군이다. 바른 손에 장창을 가지고 왼손에는 방패를 가지고 몸을 보호하는 밀집대형으로 페르시아군을 맞아 싸운다.
제 아무리 페르시아군이 대군이고 강력하다 하더라도 힘을 써서 진격하기에는 어려운 지형이었다. 그래서 그리스연합군은 페르시아군을 누르려고 생각하였다. 토의한 결과 여기를 사수하는 것은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스파르타의 300명의 정예군이 맡기로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수하기에 절호의 지형으로 최강이라는 스파르타군이라도 300명과 수십만과는 차이가 너무 심하다. 실제로 레오다니스는 처음부터 죽을 각오로 대하였다.
출전 당일 고루고는 남편인 왕 레오니다스의 눈을 뚫어지게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 레오니다스도 고루고의 눈을 보면서 말하였다.
“좋은 남편을 만나서 좋은 아이를 낳으시오.” 이것이 부부의 최후의 대화였다고 한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속에는 사랑이라는 정이 흠뻑 담겨 있었다.
이리하여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스파르타군은 페르시아군 앞에서 일보도 물러서지 않고 3일간이나 버티다가 전원이 옥쇄했다. 페르시아군의 피해는 참으로 컸다. 구세르세스의 두 형제가 전사하였다.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스파르타군이 귀중한 시간을 버는 동안 아테네 해군은 페르시아함대를 좁은 사라미스해협으로 유도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리하여 바다와 육지로 동시에 공격하려는 구세르세스의 계힉은 무산되었다. 동시에 두 번째 페르시아군의 침략은 실패하였다.
연약한 남자는 쓸모가 없다.
레오니다스 사후 많은 젊은 유력자가 고루고에게 구혼했다. 그 중 어느 외국 부자의 아들이 고루고에게 달콤한 말로 접근하였다. 보통은 여자는 달콤한 말에 너머나기가 일수인데 고루고는 냉정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서 바로 나가시오. 스파르타에는 여자 닮은 남자는 쓸모가 없습니다.”
스파르타 사회에서는 밖으로나 안으로나 사람은 항상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강한 여자만이 강한 남자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은 스파르타 고유의 전통적인 생각이었다. 고루고는 그 후 재혼했는지 언제 죽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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