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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위,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1717년~1780년)

간천(澗泉) naganchun 2023. 12. 19. 03:14

제58위,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1717년~1780년)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17171780는 합스브르그제국 소위 오스트리아의 군주로서 실질적인 <여제(女帝)>이다. 실제의 칭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오스트리아대공(재위 ; 1740-1780), 헝가리여왕(재위1740-1780), 보헤미아여왕(재위 1740-1741, 1743-1780)이다. 신성로마제국황제 카르6세의 딸로 합스브르크=로트리겐조독일어;Habsburg-Lothringen-Haus불어;Maison de Habsbourg-Lorraine의 동 황제 프랑스1세 슈데판독어 ; Franz I. 1708128- 1765818/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의 황후이면서 공동통치자이다.

 

오스트리아계 합스브르그(Habsburg)가 남계 최후의 군주이고 그녀의 차대부터 정식으로 부의 가명 로트리겐(Lothringen/로레느)과의 복합성(複合姓) (이중성)으로 합스브르크=로트리겐(독어 ; Karl Habsburg-Lothringen)()가 된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좋아해서 사용한 칭호는 <Königin여왕><Kaiserin황후>의 머리글자를 취하여 <KK>이고 이후 합스브르그가로 관례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위키페디아)

 

18세기 유럽을 석권한 합스브르그가의 여성당주이다.

합스브르그가는 혼인관계에 의하여 여러 지역의 왕이나 황제를 배출한 일족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자체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아버지 칼 6세의 사거에 따라 최초로 오스트리아대공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프로이센왕이 이의를 제기하여 슈레젠(독어 ; Schlesien)이라는 지역의 할양을 요구하고 이에 편승하여 바이엘공(독어 ; Herzog in Bayern)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계승권을 주장하고 선조대대로 숙적이었던 브르봉조(불어 ; dynastie des Bourbons프랑스왕 루이 15세도 이에 동조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마리아 테레지아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 제 국가와의 사이에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의 결과 프로이센에 슈레젠(독어 ; Schlesien) 지방을 빼앗기게 되었는데 무사히 아버지의 지위를 계승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신성로마황제에는 부군인 프랑스1독어 ; Franz I. 1708128- 1765818가 취임하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대공, 헝가리여왕, 보헤미아여왕을 겸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슈레젠을 빼앗긴 한이 깊어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브르그가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프랑스의 브르봉가와 손을 잡았다. 이에 너무나 충격을 받은 유럽에서는 이것을 <외교혁명>이라 할 정도였다. 다시 러시아와도 동맹을 맺고 프로이센 포위망을 형성하여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간에 7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영국이 프로이센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개입하여 마치 국제전 양상을 나타내었다. 최종적으로는 오스트리아 측은 슈레젠의 영유권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 배경에는 프랑스가 영국과의 프렌지=인디안전쟁(175463, 7년 전쟁과 동시에 전개된 북미대륙에서의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다)에 패배한 것이나 러시아의 군주가 변심하여 프로이센에 붙는 정치를 행한 점 등이 있다.

 

이 일련의 전쟁을 통하여 브르봉가와 합스브르그가의 사이가 강해지고 그 결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 앙뜨와네트는 후에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비가 되었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강한 동맹관계를 맺게 되었다.

출처=f:id:myworldhistoryblog:20190718184820j:p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