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고찰의 실마리, 차원에 대하여
시간을 생각하는 실마리 <차원수>
제2회, 제3회에서는 <시간의 화살> 제4회, 제5회에서는 <엔트로피> 등 시간과 방향에 대하여 <어째서 시간은 한 방향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이번에는 방향과 나란히 시간 고찰에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차원>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물리학에서는 <차원> 수에 대하여 <차원수>라고 한다. 차원이란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의 직선만의 세계를 1차원, 가로와 세로가 있는 평면을 2차원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가로, 세로, 높이가 있는 입체의 세계이므로 3차원이다.
그러면 시간이라고 하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차원수는 <1>, 곧 1차원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하나의 직선만으로 되어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방향>의 특징을 가미하면 시간은 이 직선 위를 한 방향으로만 가서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1차원이라는 것은 잘 생각해보면 불가사의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공간은 3차원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만들어내고 우리들이 사는 이 세계의 있는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는 상대성이론의 근간이 되는 사고방식으로는 시간과 공간은 일체로서 잘라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 게다가 시간과 공간은 대등하고 거기에 상하관계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합쳐서 <시공>이라는 말로 불리는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간이 3차원이면 시간도 3차원이어야 하는데 훨씬 단순하여 보통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째서 자연계는 시간 쪽은 1차원으로 한다는 부자연한 일을 한 것일까?
기원 1세기의 아인슈타인
그러면 시간이 참으로 1차원인지를 생각해보기 위하여 우주는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는 데서 시작하고자 한다.
당돌하지 않은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참으로 잠간만 만나보자.
고대로부터 인류는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우주를 어떻게 해서든지 이해하려고 여러 가지로 달라붙었다. 특히 4대문명에는 각각 그에 대응하는 우주관이 있고 제1회에서는 이집트에 전해지는 천공을 관장하는 여신 누드를 소개하였다. 인도에서는 우주의 중심에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위에 인간이 있고 산이 있는 대지는 3마리의 코끼리가 받치고 있는데 그 코끼리는 거북의 등에 올라타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기원 150년 무렵의 전한시대의 <회남자(淮南子)>에는 <왕고래금(往古來今)(과거와 현재 곧 시간)>을 주(宙)라 하고, 사방상하(四方上下)(공간)을 우(宇)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치 <우주>란 시간과 공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이라 부른 우주관과 일치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유도된 현대물리학의 우주관에서는 우주는 <시공>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입체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을 <시공다양성>이라 부르고 있다. 그 중에 소립자나 별이나 혹성이 떠있다는 이미지이다. 소위 우주는 1개의 그릇(器)이기도 하다.
다음은 우주의 형상이다. 우주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기본적으로 (1) 어디까지 평탄(이미지 하기는 어렵지만 3차원의 공간이 평탄한 대로 계속 이어진다.) (2)는 구체(球體) (3) 말의 안장 모양(鞍型), 이 생각된다.
이런 공간의 형상에 대해서는 공간 중에 2개의 빛을 평행하게 발사하였을 때 그것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로 알 수 있다.
(1)의 <어디까지나 평탄>하다면 2개의 빛은 줄곧 평행인 채로 계속 진행한다.
(2)의 <구체>라면 2개의 빛은 가까워져서 이윽고 얽힌다.
(3)의 <말안장 모양>이라면 2개의 빛은 점점 떨어져서 멀어져 간다.
현재의 실제의 관측에서는 <어디까지나 평탄>이 바른 해석(正解)이다. 단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관측이라서 이론적으로 우주가 어디까지나 평탄하다고 증명된 셈은 아니다.
또 (1)에서 (3)처럼 공간이 평탄한 것인지 굽어있는지를 나타내는 말이 곡률(曲率)이다.
(1)의 평탄한 공간은 곡률이 0(영)이다. (2)의 구체는 곡률이 정(正+)(>0), (3) 말안장은 곡률이 부(負-)(<0)라고 생각된다.
그것들의 다름은 그 표면에 삼각형을 그렸을 때 그 내각의 화가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알 수 있다. (1)은 180도인데 (2)에서는 180도보다 커지고 (3)에서는 거꾸로 180도보다 작아진다.
그러면 참은 우주는 어떤 곡률로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 답은 아직 알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알아낼 수 있는 길만은 알고 있다.
우주의 모양을 구하기 위해서는
Rμν−12gμνR=8πGc4TμνRμν-12gμνR=8πGc4TμνRμν-12gμνR=8πGc4Tμν
이것은 일반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 방정식이다. 물리학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방정식에 더해서 그것이 이끌려나오기까지의 <작용>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작용을 보고 놀라는 것은 단 한 마디 이렇게밖에 적혀있지 않다.
이 ‘RRR’을 변분하라.
<변분(變分)>이란 미분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좋다. 매우 투박하게 말하면 식의 좌변은 앞에서 말한 곡률. 곧 시공의 굽으러짐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우변은 그 시공 중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에너지의 양의 크기를 나타내고 있다. 곧 <그릇(器)>과 그 속 내용이 어떤 종의 균형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에너지도)의 양을 모두 안다면 우주의 모양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는 정체마저 불명이지만 그 크기는 실은 정확하게 견적되어 있어서 그것을 가미하여 방정식을 풀면 우주는 평탄하다고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현재의 결론이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의 존재 등은 알지 못했으나 <모양>에서 <변화하는 방식>까지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의 ‘RRR“에서 풀어 밝히는 것이 이 방정식의 불멸의 매력이다.
시간이 2차원이었던 경우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공간이 3차원으로 시간이 1차원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아인슈타인이 결정해버린 것 같은 점이 있다. 그런데 우리들 ‘물리학’은 자연에 있는 대칭성을 사랑하고 있으므로 공간과 시간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안정되지 못하다는 것도 정직한 기분이다.
그래서 여기서 한 가지 공간이나 시간의 차원은 참으로 달리는 있을 수 없는가. 혹시 다른 차원으로 바뀌면 어떻게 되는지를 매우 진지하게 의론해보고 싶다.
가령 공간은 3차원 그대로 두고 시간의 차원을 하나 불려서 2차원이 되면 어떤지를 생각해본다.
그러면 우리들 세계에서는 직선상(直線狀)이 되어서는 시간이 평면상을 나아가는 것처럼 된다. 원을 그려서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있다. 따라서 과거로 간단히 되돌아가게 되어 우리들의 도전도 완료하고 만다. 그리고 1차원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류에게는 곤란한 꿈이 하나 실현하게 된다. 그래 타임머신이다.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당신은 위험!?
단지 우리들이 그 사용법을 익히기 전에는 꽤 고생한다.
<어버이 살인의 파라독스>라는 말은 여러분도 들은 일이 있을는지 모른다.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을 낳기 전 어머니를 찾아내어 죽인다면 미래의 당신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므로 지금 존재하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모순이다. 그러면 참으로 타임마신을 탈 수 있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에서는 주인공 마티가 과거로 돌아가서 미래의 자기의 양친과 만나는 댄스파티 회장에 가서 어떻게 두 사람을 붙이려고 분투한다. 그러는 가운데 미래의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하게 되어 그것이 이루어지게 될 즈음에 자기가 사라질 것 같이 된다는 연출이 있다.
<어버이 살인 파라독스>에서도 모순을 해소하는 데는 <어머니를 죽이려 한다면 자기가 사라진다.>고 하는 답이 제일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타임마신을 가질 수 있는 인류의 세계에서는 <사용상의 주의>에 그렇게 기재되어 있을는지 모른다. 게다가 어머니 살인은 시간이 몇 차원이 되더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인데.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85) SF영화
( 1985년 12월 7일 공개 116분)
줄거리
자동차형 타임머신으로 1985년에서 1955년으로 시공을 이동한 고교생이 자신과 동세대였던 양친과 만나 소동을 일으킨다.
1985년. 친구인 과학자 도구(크리스토파 로이드역)와 알게 된 고교생 마티(마이켈 J 퍽스역)는 그가 애차 들로리안 자동차를 기초로 개발한 타임머신을 보여주었다. 시운전을 하려고 할 때 도구에게 원한을 품은 테로 집단이 습격을 받는다. 총탄을 받아 쓰러지는 그를 본 마티는 들로리안으로 도망쳐서 그대로 1955년으로 타임스립((time+slip/시간이동=현실의 시간. 공간에서 과거나 미래 세계로 순간 이동하는 것))하였으나 들로리안의 연료가 끊기어 1985년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게 된 마티는 그 시대에 알았던 도구에게 도움을 구하여 돌아오려 하지만 또 고교생인 어머니에 반해버린다.========
역시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는 김에 다시 한 가지 <데쟈뷰(deja-Vu)>도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다.
==========*<데쟈뷰(deja-Vu/旣視感=일반적으로 <데자뷰를 느낀다.>는 식으로 사용한다. <어디서인지 경험한 것 같은 감각을 나타내는 말)======
이것은 주인공이 과거의 여러 가지 시점으로 날리는 소위 <타임와프(Time Warp/시간 건너 띄기/시간 왜곡)>를 테마로 한 SF이다. 주인공은 이미 몇 번이나 타임와프를 경험하여 몇 번째인가의 시간을 건너 띄는 데서는 전에도 시간을 건너 띄다가 목숨을 죽인 자기 자신의 유체를 발견하거나 한다.
그런 주인공의 희롱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타임와프(Time Warp) 어떤 현상인지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면 사고로 죽은 친구를 구하기 위하여 과거로 되돌아가서 그것을 회피하려고 노력해도 이미 <친구가 죽었다.>는 기록이 역사에 짜인 이상 어떤 손을 써서도 친구를 구해낼 수 없도록 모든 사상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한 번 죽어버리면 기록된 사실은 변경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신이 오랜 기념사진을 보고 있을 때 그 사진의 촬영현장에 시간을 건너 띄어서 온 사람이 있어서 찍혔다고 하면 그 사람은 당신이 보고 있는 사진에 돌연 떠오르는 것이 아니고 이미 이 사진의 어딘가에 찍혀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곧 과거에 일어난 일은 약간의 경위의 다름은 있어도 역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차원이 2개 있어도, 하나는 매우 작을는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혹시 이 세상의 시간이 2차원이고 또 하나 시간의 차원이 있다고 해도 2개의 차원의 크기는 대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현실로 시간 왜곡이라는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시간이 또 1차원이 있어도 그것은 매우 작아서 물리적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큰 쪽의 시간축이야말로 지배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거의 결정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위 그것은 대하 같은 흐름이다. 또 하나의 매우 작은 시간 축은 그 빠른 흐름에 항거하여 대하를 수직으로 가로지르려는 작은 배 같은 것이다. 그리고 대하의 흐름은 너무나 빨라서 작은 배는 건너편으로 건너기도 매우 어렵다.
어쩌면 <미소한 시간>이란 <양자적>이라는 의미로 가까울는지 모른다. 곧 가령 작은 배가 대하를 가로질러서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거기서 일으킬 수 있는 물리현상은 양자적인 미소한 것밖에 안 된다고 추측하고 있다. 앞 회에서 소개한 것처럼 양자컴퓨터에 의한 실험 중에 <막스웰의 악마>가 나타나서 시간이 거꾸로 되돌아오는 현상이 실제로 소립자 레벨에서 관측되었다.
다시 시간을 3차원으로 하면!?
시간의 차원을 3차원으로 올려보면 어떨까? 공간 3차원+시간 3차원으로 한 6차원의 시공에 대하여 최후로 생각해보자. 말할 것도 없이 <물리전문가>가 고루 사랑하는 대칭형이다. 역시 보기에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시간의 차원이 불어나면 자연계의 여러 가지 시스템이 불안정해진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세계를 만들고 있는 원소의 부품인 양자에는 <수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붕괴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원소도 흩어져서 이 지구도 우리들도 끝이나. 그러나 양자의 <수명>은 우주의 연령보다 길다고 하고 있으므로 당장은 괜찮다. 그러나 혹시 시간의 차원이 불어나면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어째서일까?
1차원일 때는 <수명>을 정하는 기준(자)은 하나였다. 차원이 불어나면 기준(자)의 수도 불어난다. 어느 시간 방향에 대해서는 <수명>으로 안정되어 있어도 다른 시간방향에 대해서는 <단명>해서 불안정이라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내진구조를 주장하고 있는 빌딩이 옆으로 흔들리는 데는 강하지만 다른 방향으로는 위험한 것처럼 측정하는 시간축이 불어날수록 불안정해져서 붕괴할 확률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일 것이다. 공간도 포함해서 차원수가 많아질수록 <안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결국 차원수를 불리는 것은 무리일까?
그러나 어쩌면 시간의 차원은 2차원, 3차원, 혹은 더 커서 이러한 불안정을 히피하기 위하여 여분의 차원이 작게 말려져있다고 하면.... 그렇게 망상해보는 것도 흥미가 있다.
이번 기사에는 시간의 차원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꽤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시간의 거꾸로 되돌아오는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가른 차원을 생각해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2차원이다.>고 하는 물리학에서는 금기라 할 수 있는 이론도 실제로 학술논문으로서 발표되고 있고 지금도 의론하고 있는 연구자가 있다는 것도 더해두고자 한다. 아무리 소수파라고 생각하는 연구에도 일전하여 주류가 되는 것은 과학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타임마신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현되었다 하더라도 어머니하고 연인 관계는 되지 않도록 요주의바람.
출처=gendai.ismedia.jp ›
필자=다카미스 유이치(高水裕一)
1980년 도쿄 생, 츠쿠바대학(筑波大學) 계산과학연구센터연구원. 2003년.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 이공학부물리학과 졸업. 2007년, 와세다대학에서 이학박사. 2009년,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이학계연구과 빅뱅센터 특임연구원. 2012년, 교토대학(京都大學) 기초물리학연구소PD학진특별연구원. 2013년 영국게임브리치대학 응용수학. 이론물리학과이론우주론센터에 소속하여 그 소장인 스티븐 호킹박사에 사사. 2016년부터 현직. 전문은 우주론. 근년에는 기계학습을 사용한 의학물리학 연구에 정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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