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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발화의 발명 (2/3)

간천(澗泉) naganchun 2026. 2. 10. 02:39

인간과 불의 역사 (2편) 

인공 발화의 발명 (2/3)

 

■ 인광과 잠수함

 

1669, 독일의 연금술사 헤니히 브란트는 함부르크의 연구소에서 기묘한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인간의 소변을 대량으로 모아 수분을 증발시키는 실험이었다.
왜 그런 악취를 감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소변 속에 은을 금으로 바꾸는 물질이 있다고 믿었다.

돈에 대한 욕망은 발명의 어머니일까?


하지만 브란트의 기대는 빗나갔다. 소변에서 나온 것은 황금빛 액체가 아니라 <()>이었다.

인은 원소기호 P, 원자번호 15의 원소로, 질소족에 속한다. 발화 온도가 낮고 공기 중에서 신비로운 인광을 발한다. 이 특이함 덕분에 인의 발견 소식은 독일 전역에 퍼졌다.
1680년에는 로버트 보일이 인의 공업적 제조법을 확립해, 값싼 인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인은 성냥에 적합할 뿐 아니라, 연소를 수반하지 않는 자연 발광이라는 특징도 있다. 인광은 반딧불이 빛만큼이나 미약해 조명으로는 쓸 수 없지만, 이 역사적 발명에 기여하게 된다.

 

1775년 가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세계 최초의 잠수함 실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실험 주체는 발명가인 부시넬 형제였다. 잠수함은 거북이를 닮았다 해서 터틀호라 불렸다.

이 잠수함은 단순히 잠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선을 파괴하는 공격형 잠수함이었다. 시대를 고려하면 오파츠(시대착오적 초과기술)에 가깝지만, 세부를 보면 다소 허술하다.
높이 2m, 1m로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크기였고, 페달을 밟아 스크루를 돌리는 인력식이었다. 어뢰 대신, 적선 밑바닥에 매다는 수뢰로 공격했다.
설계도를 바탕으로 복원한 그림을 보면, 마치 놀이공원의 잠수정 같다.

 

그렇다면 인광과 잠수함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인광이 없었다면 터틀호는 잠항할 수 없었다.

수중에서는 선내가 어두워 조명이 필수지만, 당시에는 전기조명도, 성냥도 없었다. 촛불을 켜면 밀폐된 공간에서 곧 산소 부족에 빠진다.
그래서 연소하지 않는 인광이 사용되었다. 다만 소변에서 얻은 인이 아니라, 나무에 붙은 균류가 내는 인광이었다.

인광은 약하므로 선내 전체를 밝힐 수는 없었다. 대신 수심계와 나침반만 보이면 충분했다.
유리관 속 코르크가 오르내리는 수심계의 코르크, 나침반의 바늘과 방위 표시에는 인광을 내는 균류가 발라졌다. 이를 통해 잠수함의 수직·수평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처럼 부시넬 형제의 공격형 잠수함은 현대의 핵잠수함과는 전혀 다르지만, 인의 발견이 잠수함 발명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의 가장 큰 공헌은 잠수함보다도 성냥에 있다.

출처=https://benedict.co.jp› small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