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59, 조르주 퀴비에(1769-1832) 이야기.(2/5)
=땅속의 화석에서 고생물을 복원하는 비교해부학의 개척자=
1, 출생과 가정
장 레오폴드 니콜라 프레데리크 퀴비에는 종교개혁 시대부터 개신교 조상이 살던 몽벨리아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안느 클레망스 샤텔, 아버지는 스위스 근위대 중위이자 몽벨리아르 시의 부르주아였던 장 조르주 퀴비에였다.
당시 몽벨리아르는 뷔르템베르크 공국에 속해 있었으며, 1793년 10월 10일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젊었던 어머니의 열정적인 가르침을 받아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났다[.
리(Ly)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그의 삶의 가장 이른 시기부터 가장 끈질긴 노력의 대상이었다. 군주, 왕자, 가장 건조한 연대기의 긴 목록조차도 한 번 그의 기억 속에 정리되면 결코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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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육
10세 무렵 김나지움에 입학한 직후, 그는 콘라드 게스너의 『동물지』(Historiae Animalium)를 접하며 자연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후 친척 집에 자주 드나들며 뷔퐁 백작의 방대한 『자연사』를 빌려 읽었고, 이를 여러 번 탐독한 끝에 많은 지식을 얻었다. 그 결과 12세 무렵에는 “일류 박물학자와 다름없이 네발짐승과 조류에 정통했다”.
그는 슈투트가르트의 카롤리네 아카데미에서 4년간 공부하며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입학 당시 독일어를 전혀 몰랐지만 불과 9개월 만에 독일어 학교상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독일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지질학자 아브라함 고트로프 베르너(1750–1817)의 연구를 접했다. 베르너의 해양기원설(네프투니즘)과 지질학적 이해에서 암층의 3차원적·구조적 관계를 엄밀하고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것의 중요성 강조는, 퀴비에의 과학 이론과 방법의 모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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