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59, 조르주 퀴비에(1769-1832) 이야기.(4/5)
=땅속의 화석에서 고생물을 복원하는 비교해부학의 개척자=
연구 업적
1,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 확립에 공헌
조르주 퀴비에 남작(Jean Léopold Nicolas Frédéric, baron Cuvier, 1769년 8월 23일 ~ 1832년 5월 13일)은 조르주 키비에(Georges Cuvier) 로 알려진 프랑스의 자연과학자·동물학자로, “고생물학의 창시자”라고도 불린다. 키비에는 19세기 초 자연과학 연구의 중심인물이었으며, 살아 있는 동물과 화석을 비교하는 연구를 통해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의 확립에 기여했다.
그의 연구는 척추동물 고생물학의 기초로 여겨지며, 생물 분류를 계통별로 묶고 화석과 현생종을 모두 포함시킴으로써 린네의 분류학을 확장했다.
『지구론(Discours sur les révolutions de la surface du globe, 1813)』에서 그는 현재 멸종한 종들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대홍수에 의해 멸종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19세기 초 지질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격변설( catastrophe theory)옹호자가 되었다. 또한 알렉상드르 브롱냐르와 함께 파리 분지의 지층을 연구하여 생물층서학의 기본 원리를 확립하였다.
그 밖의 업적으로는, 북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코끼리 같은 뼈가 그가 “마스토돈(Mastodon)”이라 명명한 멸종동물의 것이었음을 밝힌 것, 아르헨티나에서 발굴된 거대한 골격이 선사시대 거대 나무늘보의 것이었음을 증명하고 “메가테리움(Megatherium)”이라 명명한 것이 있다. 또 파리 분지에서 단편적인 화석만으로도 프로팔라오테리움속(Propalaeotherium은 시신세전기의 유라시아대륙에 생식하던 기제목/奇蹄目/의 절멸한 속이다)과 아노프로테리움속(Anopl・the・ium)이라는 두 가지 유제류를 확립했다.
그는 익룡을 ‘프테로닥틸루스(Pterodactylus)’라 명명했고, 수생 파충류인 모사사우루스(Mosasaurus)를 기술했으며, 고대의 지구가 포유류가 아니라 파충류가 지배했음을 최초로 시사한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당시(다윈의 이론 이전) 주로 장바티스트 드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 프랑스의 박물학자, 동물을 척추의 유무로 분류).와 조프루아 생틸레르(불어 ; Isidore Geoffroy Saint-Hilaire、180-1861, 프랑스의 동물학자. 해부학자)가 주장하던 진화론에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진화의 증거는 없으며, 생명체는 대홍수와 같은 지구적 격변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사라졌다고 보았다. 1830년, 키비에와 조프루아는 유명한 논쟁을 벌였는데, 이는 당대 생물학적 사상의 두 큰 흐름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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