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뇌 전체에 있는 것인가 일부에 있는 것인가
뇌는 어떻게 마음을 낳고 있는 것일까? 뇌 연구에서의 이 근원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의문은 보다 취급하기 쉬운 문제설정, 곧 뇌의 <어디가> 마음을 낳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자세를 바꾸어 탐구하는 것이 많은 듯하다. 확실히 전자의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한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처리방식에 대하여 혹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미지의 방식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까닥하면 무엇부터 손을 써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젊은 날의 필자처럼 엉뚱하게 허덕이게 될는지 모른다.(지금도 그렇다)
한편 후자의 문제는 말하자면 <장소 찾기>이고 그것은 그것으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뇌라는 3차원 문제의 어디가 중요한지를 지적한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엉뚱하게 허덕이지도 않고 많은 연구자가 집중하여도 이상하지 않다.
이러한 연구 중에도 가장 유명한 예는 마음의 중요한 기능인 기억이 뇌 전체에 저장되어 있는가 아니면 특정한 부위에 저장되어 있는가 하는 소위 기억흔적(현대풍으로 말하면 기억정보)의 전체론과 국재론의 이론일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의 Karl Lashley 박사는 랏트에게 미로를 기억시킨 후 그 대뇌피질의 여러 부위를 부수고 기억의 소실이 뇌의 어디를 부수었는지가 아니고 뇌를 얼마만큼 부수었는지에 상관하여 생기는 것을 나타내었다. 1950년에 발표한 "In search of the engram"(Society of Experimental Biology Symposium,4:454-482,1950)이라는 논문 중에서 <어느 뇌 영역의 전체를 통하여 같은 기억흔적(engram)이 형성되고, 그 영역 전체로 널리 분포하는 신경세포(뉴런)가 특정한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을 획득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교육 불요>를 목표로 하여 교수로 근무하던 하버드대학에서의 강의도 2주간의 집중 강의로 끝마치면서 그 연구에서 Donald Hebb 박사를 비롯하여 많은 유명한 연구자를 배출한 이 매력적인 심리학자에 의한 대담한 생각은 등능설(等能説/equipotential theory)이라 불리고、전체론자의 대표로서 잘 인용된다.
그리고 그 실험의 발표 당시부터 뇌의 파괴부위가 다르면 기억의 소실이 차차 달라진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어 뇌 전체가 완전히 등능(等能)이 아님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그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뇌파괴 실험은, 기억, 지각, 운동 등 모두에 대하여 어느 특정한 부위가 특정한 기능에 의하여 크게 관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도 Lashley박사의 지적, 곧 뇌에 널리 분포하는 뉴런이 같은 능력을 획득하여 특정한 기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부정된 것은 아니다. 확실히 등능설(等能說)은 극단이지만 그것은 다능설(多能説/multipotential theory)로 모습을 바꾸어 지금까지 많은 중요한 사실을 나타내었다. 예를 들면 필자가 대학원생일 때 읽어서 크게 감명을 받은 Roy John 박사에 의한 논문 <Switchboard versus statistical theories of learning and memory
"(Science,177:850-864,1972)은 고양이가 시각변별과제를 학습하고 있을 때 광범위한 뇌 부위의 유발전위(誘發電位)가 활동 잠시(潛時)나 패턴은 조금 다르지만 학습에 맞추어 같이 변화하여 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곧 뇌의 정보는 어딘가 일부의 스위치로 온, 오프적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광범한 복수의 부위에서 통계적 혹은 확률적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전극을 두상에 장치한 고양이의 사진이 Science 지(誌)에 게재되어 있다는 금석의 감개도 가져오게 한 이 대 논문은 당시 꽤나 유명했다. 또 역시 필자가 많은 영향을 받은 연구로서(영향을 받을 뿐인데) 랏트의 여러 가지 뇌부위에서 다수의 뉴런의 활동을 동시에 기록하여 그 랏트가 소리와 먹이의 연합을 영(제로)에서 학습해가는 과정 전체를 통하여 해석한 James Olds 박사에 의한 연구가 있다.
(예를 들면 <Learning centers of rat brain mapped by measuring latencies of conditioned unit ewsponses"J.Neurophysiology,35:202-219,1972)이다.
그의 많은 논문은 랏트가 새로운 과제를 학습해갈 때 많은 뇌 부위에서 다수의 뉴런이 활동의 잠시(潛時)나 패턴은 조금 다르지만 일제히 활동을 증대시켜 가는 것을 보고하고 있다. 30세 쯤에서 저 뇌내자기자극(腦內自己刺戟)을 발견하고 유영 중의 심장마비에 의하여 54세에 요절한 이 존경스러운 심리학자가 나타낸 그 중요한 사실은 그로부터 꽤 늦어서 필자 자신도 몇 가지의 실험에서 확인하여 보고하였다. 다분히 누가 실험을 해도 같이 얻어질 완강한 현상일 것이다.
이들 연구에서 특히 학습에 의한 정보의 형성이나 표현에 관해서는 뇌는 전체적 혹은 광범위에 작용하고 있고 개개의 부위는 각각 어느 정도 다른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만 역할이 다름은 상대적이고 항상 뇌전체 중에서 협조하여 작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곧 뇌의 전체론과 국재론은 결코 대립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개개 부위의 역할은 뇌전체 중에서 결정되고 뇌전체는 항상 다수의 부위를 협조하도록 작용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은 뇌를 크게 바라볼 때만이 아니라 뇌를 구성하는 신경회로망과 뉴런 사이에도 성립하는 생각이다.
확실히 하나하나의 뉴런은 마치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는 듯이 개성적인 활동을 나타낸다. 그러나 뉴런은 다른 많은 뉴런으로부터 입력이 없다면 활동할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발적 활동은 없다. 또 접근한 뉴런끼리는 동기로 함께 활동하는 일이 많고 또 뇌가 표현하는 정보가 변하면 그런 동기가 생기거나 사라지거나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곧 하나하나의 뉴런은 함께 신경회로망을 만드는 다른 많은 뉴런과의 관계 속에서 그 연합이 정해지고 또 전체의 신경회로망은 그 중의 뉴런을 협조하도록 작용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마크로에서 미크로까지 이어진 말하자면 <전체와 부분의 자율적인 협조>야말로 뇌의 뇌다운 특성인지 모른다.
확실히 기능국재는 사실이고 그 탐구는 뇌와 마음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에 필수인데 기능 동재의 유무와 그 정도는 대체로 대상으로 하는 마음의 기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것이다. 마음을 구성하는 지각이나 운동 등이 기본적 기능은 어떠하든 소위 고차기능의 모두도 뇌의 어딘가에 국재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마음을 구성하는 제 기능은 원래 인간이 구별하여 명명한 것이니까 아무래도 불명료하게 되지만 인지, 판단, 생각하기(잔샘), 자기의식, 자아 등의 고차기능이 되면 일층 그 구분이나 정의는 불명료해서 자의적이 된다. 그것들이 어느 것이나 형편 좋게 뇌의 어딘가에 국재하고 있다고 하는 발상은 너무 낙관적인지 모른다.
그것들은 널리 분산하여 이어지고 있다는 다능설적인 생각도 같은 모양으로 검토할 가치는 있을 듯하다. 단지 아쉬운 것은 국재 한다고 해서 출발한 연구는 국재를 나타내도록 밖에 실험계획을 짜지 않고 또 그렇게밖에 데이터를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과제를 행하고 있는 동물의 뉴런 활동을 조사하는 실험의 다수가 하나의 과제를 행하고 있는 동물의 하나의 뇌부위에서 기록하고 있고 그 과제에 응해서 활동을 변화시키는 뉴런을 찾고 있다. 그래서 그러한 뉴런을 찾으면 그 부위는 그 과제 특유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결론 맺는다. 다른 과제는 어떻게 되는지 혹은 수일 후나 수주간 후에 조사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묻게 되는 것은 일부의 연구를 제외하고 그다지 많지 않다. 속담처럼 <사람은 찾고 있는 것만을 찾는다.>고 하는 것일까.
결국 마음의 실체인 뇌의 정보표현이 국재적임과 동시에 전체적이기도 하다는 일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어디까지 국재적이고 어디까지 전체적인지 또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는지 어디l까지 유연하게 변화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당분간 명확해지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연구처럼 뇌가 표현하고 있는 정보를 행동에서 추측하거나 뇌의 활동을 바라보고 거기서 해석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활동을 잡아내고 그것이 참으로 정보인지 아닌지 직접 검증하자는 시도가 200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혹시 잡아낸 뇌의 활동이 참으로 정보라면 그 활동을 써서 기계가 조작될 차례이다. 곧 마음은 뇌가 표현하는 정보니까
마음에서 생각한 것처럼 기계가 움직일 차례이다. 이런 연구에 사용하는 시스템을 브레인 마신 인터페스(Brain-machine Interface/BMI)라고 부른다.
*브레인 마신 인터페스(Brain-machine Interface : BMI)=뇌파등의 검출. 혹은 거꾸로 뇌에의 자극 등의 수법에 의하여 뇌와 컴퓨터 등의 인터페스를 잡는 기기 등을 총칭한다.
BMI에는 몇 개의 종류가 있는데 최근 특히 주목되고 있는 것이 뇌에서 외부의 기기나 신체의 근육을 직접 제어하는 운동출력형 BMI이다. 그것이 실현되면 자기의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조작되는 의수나 의족, 생각만으로 움직여주는 스위치 키보드 혹은 마비된 수족의 부활, 등이 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BMI는 간호나 신경 리하빌리테이션(rehabilitation)에 공헌할 가능성이 높은 실용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리하빌리테이션(rehabilitation)=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최적의 생활수준의 달성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각자가 인생을 변혁시키게 하는 것.
그러나 뇌의 직용이 해명되었으므로 그 성과를 실용에 활용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한 바와 같이 특히 마음과 직결하는 정보표현에 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현재 상태로는 뇌가 알아서 기계가 움직이고 기계가 움직여서 다시 뇌가 안다는 쌍방향의 프로세스를 반복하면서 연구를 진행시켜갈 것이다.
BMI연구는 뇌를 다시 해명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필자도 지금은 BMI를 주연구 테마로 하고 있지만 현재 뇌의 어디서부터 활동을 취하면 정보로서 사용할 수 있을는지 아직 그런 정보는 어디까지 안정되고 어디까지 변화할 것인지 혹은 BMI에 이어진 뇌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등에 대하여 조사하고 있다. 거기서부터 뇌가 전체와 부분을 협조시키는 자세나 정보를 표현하고 마음을 낳는 모습이 울담너머로 보일는지 모른다.
출처=www.brain-mind.jp › newsletter › story
1999년부터。의학박사, 전문은 신경과학과 실험심리학.
마음은 뇌의 정보표현이라고 생각하여 신경회로의 활동이 나타내는 정보 코드를 해명하고 그 유연한 모습을 잡는 것으로 마음은 유연함을 과학적으로 실증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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