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63, 서 에드먼드 퍼시벌 힐러리(1919- 2008) 이야기(4/8)
==세계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첫 등정한 등산가==
6,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힐러리는 이후 영국의 남극 횡단 원정대에 참가하여, 1958년에는 트랙터를 이용해 남극점에 도달했다.
또한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약 4년 반 동안 주인도 고등판무관(현 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대사 겸임) 으로 재직했다.
1985년에는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과 함께 북극점에 비행기로 도착,
이로써 북극점·남극점·에베레스트 정상의 ‘3극(Three Poles)’을 모두 정복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히말라야 재단(Himalayan Trust)> 을 설립해 네팔의 남체 바자르 지역 개발에 헌신했다.
그가 1960년에 세운 쿰중 초등학교 교정에는 지금도 힐러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1975년, 네팔 체류 중이던 그에게 비극이 닥쳤다. — 아내와 막내딸이 그를 만나러 오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은퇴 후에는 뉴질랜드로 돌아가 다시 양봉업을 재개했으며, 1989년에는 제인 멀그루(June Mulgrew) 와 재혼했다.
그녀의 전 남편 피터 멀그루(Peter Mulgrew) 는 힐러리의 등반 동료로, 1979년 뉴질랜드 항공 901편 에레버스산 추락사고로 사망한 바 있다.
2008년 1월 11일, 힐러리는 심장마비로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월 22일 오클랜드에서 국장이 거행되었으며, 유언에 따라 유해는 오클랜드 앞바다에 뿌려졌다.
그는 생전 상업적 에베레스트 등반(공모 가이드형 원정대) 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나중에 대형 참사로 사망한 로브 홀(Rob Hall) 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의 장남 피터 힐러리(Peter Hillary) 는 모험가이자 작가로, 2002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기념 등반에서 텐징 노르게이의 손자 타시 완추크 텐징(Tashi Wangchuk Tenzing) 과 함께 정상에 올랐다.
그 역시 아버지처럼 <3극 챌린지(Three Poles Challenge)> 를 완수했다.
2015년에는 힐러리의 원정 당시 일기, 사진, 장비, 강연 자료 등 오디오·비주얼 아카이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 으로 등재되었다.
출처=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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