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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62, 막스 프링크(1858-1947) 이야기 (5/5)

간천(澗泉) naganchun 2025. 11. 21. 02:55

세계의 과학자

62, 막스 프링크(1858-1947) 이야기 (5/5)

 

 

8, 사생활

막스의 첫 번째 아내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마리야 메르크였다. 부부 사이에는 두 아들(카를과 에르빈)과 쌍둥이 딸(엠마와 그레타) 두 명이 태어났다.

1909, 플랑크는 가장 사랑하던 아내를 잃었다. 몇 년 후 그는 고() 마리야의 조카였던 마르가리테 폰 헤슬린과 재혼했다.

이 결혼에서 막스와 마르가리테 사이에는 아들 한 명, 헤르만이 태어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막스 플랑크의 전기에는 그 가족에게 닥친 일련의 비극이 기록된다. 장남 카를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 전사했고, 두 딸은 1917년에서 1919년 사이에 출산 중 사망했다.

첫 결혼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에르빈은 히틀러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45년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저명한 물리학자였던 플랑크는 에르빈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으나,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플랑크는 나치가 권력을 장악했을 당시, 유대인을 옹호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히틀러와의 면담에서 유대인 박해를 중단하도록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자신의 증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거칠게 반응했다. 그 뒤로 플랑크는 이 주제를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쟁 말기, 플랑크의 집은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후 부부는 숲으로 피신해야 했으며, 한 우유 배달원의 도움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사건은 그의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는 척추 관절염을 앓아 움직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로버트 파울 교수의 노력으로 미군 병사들이 플랑크 부부를 구출해 안전한 괴팅겐으로 이송하도록 도왔다.

병원에서 몇 주를 보낸 뒤, 막스의 건강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퇴원 후 그는 다시 과학 연구와 강의에 힘썼다.

 

9, 죽음

 

노벨상 수상자인 플랑크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카이저 빌헬름 협회는 과학 발전에 대한 그의 공헌을 기려 “막스 플랑크 협회(Max-Planck-Gesellschaft)”로 이름을 바꾸었다.

1947년 봄, 플랑크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강의를 했다. 그 후 그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막스 플랑크는 1947년 10월 4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출처=https://ja.kuzminykh.org › 2353-max-planck

<막스 프랑크의 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