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 振一郎, 1906-1979). 이야기.(3/4)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 후, 대전 중에 진행한 마그네트론과 입체 회로 연구로 인해 1948년 고타니 마사오(小谷正雄)와 함께 일본학사원상을 수상했다.
1949년에는 도쿄교육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체류하면서 양자 다체계 연구를 진행하였다.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도쿄대학의 학원제(5월제)에서 특기인 독일어로 된 만담(落語)을 선보이는 등 유머 감각이 넘쳤다.
1946년에는 아사히상을 수상했다. 그는 “그때 아사히상을 받았는데, 이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돈으로 다다미 열 장을 사서 학교 오쿠보 분실의 불에 타고 남은 오두막에 거처를 마련했다.”라고 회상했다. (에자와 히로시 편 『과학자의 자유로운 낙원 ― 십년의 혼잣말』에 수록)
노벨물리학상수상
1947년에는 양자전기역학의 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규격화 이론을 정립하고, 그 방법을 활용해 수소 원자의 에너지 준위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램 시프트(Lamb shift)’의 이론적 계산을 수행하여, 실측값과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 이 업적으로 인해 1965년 가을 줄리안 슈윙거(Julian Seymour Schwinger, 1918-1994,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와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 미국의 이론물리학자)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당시 갈비뼈가 골절된 상태였기에 12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도모나가는 먼저 수상한 유카와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이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문학상을 받을 때까지 일본인 최고령 수상자였다. 또한 도모나가는 유카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1956년부터 1961년까지 도쿄교육대학 학장,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일본학술회의 회장을 지냈다. 만년에는 학교 등지에서 강연을 하며 자연과학의 보급에도 적극적으로 힘썼다. 1978년 성대암으로 수술을 받아 목소리를 잃었고, 이듬해인 1979년 재발과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교토시 히가시혼간지 외에도 도쿄 서부의 다마 영원(多磨霊園)에 분묘로 마련되었다.

'세계의 과학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8,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46-1506) 이야기(1/7) (0) | 2025.09.29 |
|---|---|
| 57.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 振一郎, 1906-1979). 이야기.(4/4) (0) | 2025.09.11 |
| 57. 도모나가 싱이치로(朝永 振一郎, 1906-1979). 이야기.(2/4) (0) | 2025.09.09 |
| 57. 도모나가 싱이치로(朝永 振一郎, 1906-1979) 이야기.(1/4) (1) | 2025.09.08 |
| 56. 유카와 히데키(湯川 秀樹, 1907-1981) 이야기. (5/5) (0) | 2025.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