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61, 라이너스 칼 폴링(1901-1994)이야기, (1/7)
==양자역학을 화학에 응용한 선구자=

1, 개요
라이너스 칼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1994)은 미국의 양자화학자이자 생화학자이다. 그는 스스로를 결정학자, 분자생물학자, 의학 연구자라고도 불렀다.
폴링은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는 양자역학을 화학에 응용한 선구자였으며 화학 결합의 본질을 기술한 업적으로 195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결정 구조 해석과 단백질 구조 규명에 중요한 업적을 남겨 분자생물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왓슨과 크릭이 1953년에 DNA의 생체 내 구조인 ‘이중 나선 구조’를 발표하기 전, 폴링은 그와 유사한 ‘삼중 나선 구조’를 제안한 바 있다.
그는 다방면의 연구자로도 유명하며, 무기화학, 유기화학, 금속학, 면역학, 심리학, 웅변술, 방사성 붕괴, 핵전쟁의 영향 등 여러 분야에서 큰 공헌을 했다.
1962년에는 지상 핵실험 반대 운동의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노벨상을 두 번 받은 5명 중 한 명이며, 단독으로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또한 서로 다른 분야에서 수상한 인물로는 퀴리 부인에 이어 두 번째였다.
말년에는 대량의 비타민 C 및 다른 영양소를 섭취하는 건강법을 제창하고, 이를 일반화하여 분자교정의학(orthomolecular medicine)을 제안했다. 그는 이를 주제로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해 이러한 개념, 분석, 연구 및 통찰을 일반 사회에 소개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비타민 C를 섭취하면 감기가 낫는다.”는 속설이 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 출생과 어린 시절
1901년 2월 28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주리주 콘코르디아 출신의 허먼 헨리 윌리엄 포울링(1876–1910), 어머니는 오리건주 론록 출신의 루시 이자벨 다링(1881–1926)이었다. 아버지 허먼은 약사였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1903년부터 1909년까지 가족을 데리고 오리건주 내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결국 포틀랜드로 돌아왔다. 그는 1910년, 천공성 궤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 라이너스 폴링과 여동생 포울린 포울링(1901–2003)과 루실 포울링(1904–1973) 등 네 거족이 살았다.
라이너스 칼 포울링은 어린 시절 열렬한 독서가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지역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아들이 몰두할 만한 책을 몇 권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시절, 포울링은 아버지의 친구 로이드 제프리스와 함께 곤충 채집이나 광물 발굴을 하며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포틀랜드의 워싱턴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로이드가 자기 방에 두고 있던 작은 화학 실험실에서 과학 실험을 보여주자 놀라움과 즐거움을 느끼며 화학공학의 길을 꿈꾸게 되었다. 실험을 위해서는,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할아버지가 일하던 곳 근처의 폐철강 공장에서 시약을 빌려오기도 했다.
포울링은 필수 과목인 미국사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자격을 얻지 못했다. 같은 학교가 그에게 졸업장을 수여한 것은 그로부터 45년 뒤인 1962년, 포울링이 두 개의 노벨상을 받은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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