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세계의 과학자 47,알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 (Albert Abraham Michelson)(1)

간천(澗泉) naganchun 2025. 6. 30. 02:58

세계의 과학자 47,

알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 (Albert Abraham Michelson)(1)

==유명한 실험을 행하여 <광속도 불변의 원리>를 밝혔다.==

 

1, 개요

알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 (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은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해군 장교로, 광속(빛의 속도)과 에테르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1907년 광학에 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과학 부문에서 미국인이 처음으로 받은 노벨상이다.

 

2, 교육과 생애

 

마이컬슨은 프로이센 왕국의 스트셸노(현재의 폴란드)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광산 도시에서 상인으로 일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 머피스와 네바다 주 버지니아시티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숙모 집에서 생활했다. 이 숙모의 딸은 후에 작가가 된 해리엇 레인 레비(Harriet Lane Levy)이다.

 

1869, 당시 대통령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 Ulysses S. Grant 1822-1885, 남북전쟁시 북군을 승리로 이끈 장군으로 후에 대통령이 됨)의 명령으로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4년간 광학, , 기후학, 제도 등을 공부했다. 1873년 졸업 후 해군에 입대해 2년간 해상 근무를 했으며, 1875년부터는 사관학교로 돌아가 1879년까지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쳤다. 1879년에는 워싱턴 D.C. 항해연감국(Nautical Almanac Office)으로 전속되어 사이먼 뉴컴Simon Newcomb1835-1909, 미국의 천문학자,응용수학자)과 함께 일하게 된다. 이듬해 유럽 유학을 위해 휴가를 받아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파리의 콜레주 드 프랑스 및 에콜 폴리테크니크 등에서 학문을 연마했다.

 

그는 과학, 특히 광속 측정에 깊이 매료되었고, 1877년에는 해군사관학교에서 최초로 광속 실험을 수행했다. 2년간 유럽에서 공부한 뒤, 1881년 해군에서 퇴역하고 마이컬슨 간섭계를 발명했다. 1883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의 케이스 공과대학 물리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간섭계를 개량했다.

 

1887년에는 에드워드 모를리와 함께 마이컬슨-모를리 실험을 수행해,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후 그는 천문 간섭계를 이용한 별의 직경 측정이나 쌍성의 거리 측정 등 천문 관측으로 연구 방향을 전환했다.

1889년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의 클라크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892년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부 창설과 함께 학부장으로 취임했다.

1899년에 결혼해 13녀를 두었다.

1907, 간섭계의 고안 및 이를 이용한 분광학 및 미터 원기 연구로 미국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코플리 메달도 수상했다. 이후 헨리 드레이퍼 메달(1916), 왕립천문학회 금메달(1923) 등을 받았다. 그의 이름을 딴 달의 분화구가 존재한다.

 

그는 78세에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사망했다. 시카고대학교에는 그의 이름을 딴 **마이컬슨 하우스(Michelson House)**가 있고,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학교 및 해군사관학교의 화학부 건물, 캘리포니아 리지크레스트의 해군 무기기지 내 마이컬슨 연구소 등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위키페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