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세계의 과학자 43,존 폰 노이만(1903-1957)이야기.(4)

간천(澗泉) naganchun 2025. 6. 5. 03:01

세계의 과학자 43,

존 폰 노이만(1903-1957)이야기.(4)

=오늘날의 컴퓨터의 원형을 만든 수학자=

 

 

5, 일화를 통해 엿보는 그의 사고 패턴

 

5-1, 소년 시절 친구와의 고등 수학에 대한 대화

 

노이만이 11세였을 때, 한 살 위 친구가 대학 수학 전공 과정 수준의 난해한 정리를 증명해보라고 물었다. 노이만은 친구가 이미 알고 있는 정리들만을 이용하여 증명해 보였다고 한다. 이는 그가 수많은 고급 수학 정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수준의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 친구는 자신이 도저히 증명할 수 없었던 정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증명해 버리는 노이만에게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12세에 그 난해한 정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 친구 역시 신동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친구는 후에 노벨상을 수상한 유진 위그너였다.

 

5-2, 쿠르트 괴델(독일어: Kurt Gödel, 1906-1978, 불완전성의 정리로 유명한 수학자)와의 교류

 

세 개의 학위를 취득한 노이만은 스승 다비트 힐베르트 등과 함께 수학의 형식적 체계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공리로부터 도출되는 정리들로 완벽하게 체계화된 수학 세계가 완성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던 찰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그러한 실현이 불가능함이 증명되었다.

천재라 불리는 위인들조차도, 누군가 자신의 논리를 부정하거나 지위가 위협당한다고 느끼면 감정적으로 반발하거나 배척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이만은 달랐다. 자신들의 이상을 무너뜨린 정리를 발표한 괴델을 오히려 존경했고, 정신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던 그를 친구로서 지지했다. 나아가 자신이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는, 유대인이었던 괴델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할 수 있도록 정부에 직접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는 논리의 정당성에 경의를 표하는 그의 한 면을 드러내는 사례일 것이다.

 

5-3,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의 나날

 

세계 최고의 학술기관 중 하나라 불리는 이 지적 환경 속에서도, 즉각적인 계산 능력과 논리적 분석 능력은 단연 돋보였으며, 동료였던 아인슈타인이나 헤르만 바일 등도 한목소리로 세계 최고의 천재라고 평가했다. 타고난 사교적인 성격 덕분에, 세 나라 언어로 농담이나 야한 이야기까지 하며 주위를 즐겁게 했다고 한다.

 

5-4, 맨해튼 프로젝트에서의 조언

 

어느 날, 두 명의 저명한 물리학자가 어떤 적분 문제에 골몰하며 칠판 가득히 수식을 써가며 계산했지만, 결국 막히고 말았다. 문을 열어둔 채 고민하던 중, 마침 지나가던 노이만을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는 칠판을 힐끗 보기만 하고 방에 들어오기 전 이미 답을 도출해냈다고 한다. 이런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 때의 물리학자 중 한 명은 후에 노벨상을 수상한 에밀리오 세그레였다.

또한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먼과 함께 수소폭탄 관련 계산 경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페르미는 계산자, 파인먼은 수동식 계산기로 문제를 풀었지만, 노이만은 암산으로 둘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도출했다. 참고로 패배한 두 사람 역시 훗날 노벨상을 수상한 위대한 천재들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