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시대
돌봄의 시대 26 저 앞치마가 좋아 : 취향의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25. 5. 4. 04:55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붉은 꽃무늬의 화사한 앞치마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단정하고 깔끔한 흰색 앞치마를 선호한다. 요양원에서도 어르신들의 취향은 저마다 다르고, 그에 맞춘 배려와 조율은 일상 속 중요한 부분이다. 취향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서, 한 사람의 내면과 삶을 드러내는 창문과도 같다.
어느 날, 한 할머니께 붉은 꽃무늬 앞치마를 둘러드리자, 저쪽에 앉아 있던 다른 할머니가 말했다. “저거 참 곱네, 나도 저걸로 해줘요.” 하지만 이미 다른 분이 착용 중인 물건을 벗겨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정중히 말씀드렸다. “지금은 저 분이 쓰고 계시니까, 다른 것도 예쁘게 준비해드릴게요.” 그러나 그 할머니는 고집스러웠다. “나는 저게 좋단 말이야.”
그때 붉은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갑자기 말했다. “괜찮아요. 이거 그 분 드리고, 난 다른 거로 해줘요.” 치매 초기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파악하신 듯, 그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양보했다. 순간적으로 멈칫했던 나는 그분의 넉넉한 마음에 감사했다. 붉은 앞치마를 원했던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고, 다른 앞치마를 받아든 할머니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양보와 배려, 그리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마음이 그 작은 순간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요양원에서는 단순히 취향을 넘어서 어르신들 각각의 필요에 따라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쇠로 된 수저를 잘 못 드는 분들에겐 플라스틱 수저를 드린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선 냉수를 준비하고, 대부분의 어르신들에게는 미지근한 보리차를 준비한다. 이런 작은 선택과 배려는 단순히 어르신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여전히 자신의 기호와 선호를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작은 사치’ 같은 것이다.
취향은 단순히 좋아하는 색깔이나 선호하는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 사람의 취향에는 그 사람의 삶의 흔적, 기억, 그리고 내면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붉은 꽃무늬 앞치마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그것이 단순히 예쁜 무늬 이상의 의미일 수 있다. 그 무늬가 과거의 어떤 따뜻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거나, 그 색깔이 자신을 더 생기있게 느끼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차가운 물을 마시는 그 순간이 하루의 작은 활력을 주는 중요한 취향일 수 있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의 취향을 존중하며 맞춰가는 일은 단순한 업무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 사람의 존엄과 개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작은 앞치마 하나, 물 한 잔, 수저 하나에서도 취향을 알아가고 맞추어갈 때, 어르신들은 자신이 여전히 소중한 존재임을 느낀다. 그들의 취향을 존중하는 일이 곧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매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게 요양원은 서로 다른 취향들이 어우러지는 작은 세상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