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세계의 과학자37,베르너 칼 하이젠베르그 이야기(4)

간천(澗泉) naganchun 2025. 4. 18. 02:22

세계의 과학자37,

베르너 칼 하이젠베르그 이야기(4)

==「불확정성원리」를 제창한 양자역학의 창시자==

 

 

6, 우라늄 항공사의 원자 폭탄 개발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팀인 우란페라인(Uranverein) 팀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이것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고 썼다.

 

1941, 하이젠베르크는 덴마크의 닐스 보어를 찾아가 <이론적으로는 개발이 가능하긴 하지만,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어렵고, 이 전쟁을 위해 원자폭탄이 제때 준비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쪽지를 건네주었다. 보어는 그 쪽지를 미국에 있는 한스 알브레히트 베테(독일어: Hans Albrecht Bethe, 1906-2005, 독일 태생 미국의 물리학자이다. 핵물리학에 공헌하였으며, '태양과 별에서 에너지가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해 연구'한 공로로 196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에게 주었다. 베테(Bethe)에 따르면 그것은 원자로 사진이었다. 하이젠베르크 싱크로트론이 불을 일으켜 한 달간 불을 끄려고 애썼는데도 불이 꺼지지 않자 전 세계에 뉴스로 중계됐고, 신문 기사를 읽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가 드디어 원자로 개발에 성공했으니 원자폭탄이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생각했다. 보어에서 베테에게 넘겨진 하이젠베르크의 메모에는 중수로인 쇠마(Schöma)가 기술되어 있었고, 이를 본 아인슈타인은 망상에 불과한 원자폭탄 개발 경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나치 관리들에게 전력 부족에 대한 해결책은 중수로 개발을 방해했다고 털어놓았지만, 그 자신은 중수로 개발을 방해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와 다른 개발자들은 영국 정보국의 비밀 정보국에 의해 영국 농장 회관에서 가택 연금을 당했고, 그곳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 투하 소식을 들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말을 듣고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계속)

 

출처: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