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세계의 과학자 30, 요하네스 구텐베르그(1398— 1468) 이야기(5)

간천(澗泉) naganchun 2025. 2. 21. 03:30

30, 요하네스 구텐베르그(1398— 1468) 이야기(5)

==활판인쇄술을 발명하여 현대인쇄법의 기초를 구축했다.==

 

 

8, 인쇄업 재개와 유럽 전역 확산

 

소송에서 패소한 후, 구텐베르크는 다시 자택에서 작은 규모로 책을 인쇄하기 시작했으며, 1457년과 1460년에 라틴어 사전인 카톨리콘을 출판하였다. 1462, 나사우의 대주교 아돌프 2세가 마인츠를 점령하였고, 이때 구텐베르크는 마인츠에서 추방되어 어린 시절 잠시 거주했던 마인츠 근처 도시인 엘트빌레로 이주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신기술에 큰 관심을 가졌던 대주교 아돌프 2세는 그가 마인츠에서 인쇄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락했으며, 1465년에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연금을 하사하였다. 그는 한동안 아돌프 2세의 궁정에서도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구텐베르크는 1468,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한편, 구텐베르크의 인쇄소를 이어받은 요하네스 푸스트는 자신의 사위이자 구텐베르크 아래에서 일했던 인쇄공 페터 셰퍼와 함께 인쇄소를 운영했다. 푸스트가 흑사병으로 사망한 후에는 셰퍼가 단독으로 인쇄소를 운영하게 되었고, 이후 셰퍼 가문은 유럽 각지에 인쇄소를 설립하며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인쇄업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셰퍼뿐만 아니라 구텐베르크 밑에서 일했던 여러 인쇄공들이 유럽 각지에 인쇄소를 차렸고, 이로 인해 인쇄술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9, 인쇄기의 개발

 

구텐베르크 활판 인쇄기로 600년이 지난 지금도 문서 인쇄가 가능하다.

세계사에서는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대량 인쇄술로 공인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한 사람이 구텐베르크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가지는 의의는 인류의 지식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킨 데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덕분에 당시 초고가의 사치품이었던 책이 대중화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활자화된 지식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금속활자를 제작했음에도 보급에 실패했고, 이후 조정에서 대량 생산한 농서직설, 동의보감 등의 책도 모두 목판 인쇄로 제작되어 사실상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