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이작 뉴턴(1642~1727)이야기(4/13)
2, 아이작 뉴턴(1642~1727)이야기(4/13)
==떨어지는 사과에서 힌트를 얻어 근대과학의 기초를 구축했다.==
4, 루가스수학 교수가 됨
이 무렵 뉴턴은 만유인력이나 운동의 법칙의 발견만이 아니라 미적분법을 개발하여 빛과 색의 이론(광 입자설이라는 것)도 정리하고 있다. 마치 <경이의 해>라 할 수 있다.
당시 트리니티 칼리지의 헨리루가스의 기금에 의한 루가스수학 초대교수는 아이작 바로(뉴턴의 선생)였다. 뉴턴(1667년에 우연히 공석이 된 자리에 교원이 되어서 대학에 남았다)의 재능을 인정한 바로(Isaac Barrow、 1630-1677, 영국 성직자, 수학자, 케임브리지대학 초대학장 루가스 교수직 역임, 38세 때)는 1969년에 그 직을 뉴턴(25세)에게 양보한다. 더구나 바로가 그 자리를 양보한 것은 본직인 성직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뉴턴은 프로의 학자로서 안정된 생활기반을 얻게 되었다.
===*루가스 교수직 (Lucasian Chair)= 헨리 루가스(Henry Lucas, 영국 하원의원)의 기부에 의하여 설립되고 대대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유명한 교수직임)===
그런데 교수직으로서 의무는 적고 1년에 10회 정도의 강의, 주 2회 정도의 학생과의 토론에 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를 그대로 강의하였으므로 학생으로서는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고 수강자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토론하러 오는 학생이 없기도 하였다. 천재라고 해서(천재야말로) 우수한 교원은 아니다. 참으로 학생이 어째서 모르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 후 이 루가스수학 교수직을 담당한 사람은 유명 인이 많고 현재 이 루가스수학교수직에 있었던 자는 저 호킹이다. 스테픈 윌리암 호킹(영어: Stephen William Hawking, CH, CBE, FRS, 1942년 1월 8일 ~ 2018년 3월 14일,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은 1980년에 38세로 이 직에 취임했다.